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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의사 선생님
술은 진정 독인가?
by
석담
Sep 28. 2022
20여 년 전 뇌하수체에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건강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얼마 전 코로나 19에 확진되어 격리가 끝난 후 매년 주기적으로 하던 혈액 검사를 했다.
직장인이라 주중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주로 쉬는 날인 토요일에 검사 예약을 해서 받곤 했다.
내 심장을 후덜 거리게 한 그 친절한 의사 선생님의 톡이 온 것은 피검사받은 며칠 뒤였다.
여기서 잠시 그 친절한 의사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대학병원 신경외과 학과장이었던 L교수와 만난 건 2004년 뇌하수체 종양 판정을 받고 나서이다.
내 담당교수로 지정되어 인연을 쌓은 게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의대를 수석 졸업했다는 그는 나보다 1살이 적었다.
석 달에 한번 외래진료에서 만나면 항상 사적인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도 곁들여 화제를 이어가는 그는 어느새 내 주치의가 되어 있었다.
직장 생활로 바쁜 나를 위해 직접 검사 예약도 해주고 친절하게 톡을 보내 설명까지 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가 이렇게 내게 친절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 당시 뇌하수체 종양 수술을 받고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문제가 생겨 재수술을 받았다.
그것 때문에 뇌막염이라는 합병증이 왔고 한 달이 지나서야 완치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매일 39, 40도를 넘나드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아내는 나를 휠체어에 싣고 생전 처음 의국으로 이라는 곳에 가서 그를 만났다.
그곳에서 아내는 내 남편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그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퇴원했다.
그렇게 나를 다시 살려낸 의사가 그이다.
그렇게 그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상복부 CT촬영을 기다리는 2주 동안 나는 삶에 의욕이 없었다.
'간이 손상되었으면 어쩌나?'
'췌장암은 아니겠지?'
온갖 엉뚱한 상상을 하며 인터넷을 검색해서 간수치와 췌장 지수에 대한 온갖 자료를 섭렵하여 달달 외울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오전 CT촬영을 마치고 떨리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그에게 톡이 왔다.
간이나 췌장에는 이상이 없고 쓸개에 돌(이미 알고 있음)이 있고 신장에도 물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화 마지막에 그는 강한 어조의 문구 하나를 덧 붙였다.
"절주(節酒)하세요"
그래도 금주(禁酒)나 단주(斷酒)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의사들은 술을 독극물로 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났다.
그동안 술에 너무 진심이었던 나를 반성한다.
'소맥'에 '혼술'에 찌들고 술을 모든 만남의 매개체로 써온 내가 후회스럽다.
내 아내를, 내 딸들을 위해 더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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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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