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일요일
오후 내내 농막에서 빈둥거렸다.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선뜻 시작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음력 9월 29일인 내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매년 생일파티를 해주고 자금사정이 넉넉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반지나 팔찌, 발찌 같은 금으로 된 장신구를 선물했다. 그렇지만 올해는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선물을 생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녁 6시가 넘어 농장을 대충 정리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떡케이크는 이미 떡집에 주문해 놓고 큰딸에게 아내가 눈치 못 채게 수령해 두라고 작전을 짜 두었다.
귀갓길에 축협에 들러 국거리 양지살이랑 미역을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음을 최대한 줄여가며 미역국을 끓였다. 아내는 며칠 남지 않은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참기름을 두르고 양지를 볶아 물을 붓고 미역을 넣어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미역국은 언제나 실패가 없다. 소고기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
하얀 쌀밥과 미역국을 준비하고 큰딸에게 케이크를 가져오라고 톡을 보냈다.
생일 케이크를 세팅하고 양초에 불을 부쳐야 하는데 떡케이크 안에 성냥이 없다.
"이런 낭패가 있나?"
공교롭게도 금연한 지 오래고 집에도 가스레인지 대신에 전기 레인지 밖에 없었다.
큰딸은 전혀 집 밖에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구시렁거리며 집 앞 편의점에 들러 라이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밥과 미역국이 식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내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아내는 올해는 왜 선물이 없냐며 정색을 했지만 나는 올해는 마음의 선물을 준비했다고 아재 개그를 하고 말았다.
10월 27일 목요일
오늘은 음력 10월 3일 내 생일이다.
아내 생일에서 3일 지나면 내 생일이다.
시험공부 중이라 생일에 신경 못 써도 어쩔 도리가 없지만 미련이 남았다.
아침에 미역국을 기대했지만 밤늦게까지 공부했는지 아내는 한밤중이다. 막바지 마무리를 위해 어제부터 3일 동안 연가를 냈단다.
점심 무렵 장인어른이 전화를 하셨다.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아내에게 내 생일상도 신경 쓰라고 미리 이야기해 두셨단다.
큰딸에게 선물 받은 생일 케이크 쿠폰을 톡으로 보내 케이크를 따로 사지 말고 그걸로 준비하라고 알려줬다.
퇴근 후 미역국을 곁들여 생일상도 받고 아내와 큰딸이 준비한 생일파티도 했다.
그리고 아내의 뽀뽀를 생일 축하 선물로 받았다.
장인어른 덕분에 올해는 제대로 된 생일을 보냈다.
11월 5일 토요일
삼일 후인 다음 주 화요일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오늘은 남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 그리고 장인어른을 모시고 부모님과 함께 본가 근처의 고급 한우집을 찾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한우를 배부르게 먹고 케이크도 자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장인어른, 처형, 처남댁 등 여러 처가 식구들로부터 생일선물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선물에 많이 부담스러워하셨지만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의 생일파티를 더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괜스레 우울해졌다.
11월 7일 월요일
오늘은 입동이다.
지난 주말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많이 추웠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오려나 보다.
내일은 어머니 생신이다. 어머니께 축하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리고 보니 다음 주 월요일이 여동생 생일이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많이 힘든 여동생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생일선물을 준비해야겠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내가 여동생 생일에 선물을 한 적이 있었나 후회가 된다.
나는 참 나쁜 오래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