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야 미안해

주말농부일기(4월 15일 - 16일)

by 석담

"감짜합니다"

이 말은 들으면 나는 피식 웃음이 난다.

둘째 딸에게 편의점 쿠폰을 선물하거나 용돈을 보내면 항상 톡으로 감사의 마음을 나에게 이렇게 전하곤 한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항상 감자를 떠 올렸다.

주말농부 3년 동안 내게 제일 감사한 작물이라면 주저 없이 감자라고 말할 수 있다. 감자는 한 번도 실패가 없었고 제일 손이 덜 가는 그야말로 효자 농작물이다.


한번 심으면 특별한 병충해가 없고 조금만 신경 써도 튼실한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 반찬 재료를 베풀어 주는 식물이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나는 적지 않은 감자를 수확하여 일가친척들과 나누어 먹고 우리 가족들이 삶아서 먹기도 하고 반찬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올해는 아니다.

감자 파종 후 2주가 흘렀지만 감자 잎이 배색 비닐 멀칭 안으로 보일 기미가 없다.

불안한 마음에 어머니와 비닐을 뜯어 감자를 확인해 보았다.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했던가?

대부분의 감자가 물먹은 스펀지처럼 썩어 있었다.

하늘이 노랬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90퍼센트의 감자가 썩어서 나뒹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도 도대처 알 길이 없다. 종묘사에 전화했더니 과습 했거나 바이러스가 침투한 거 같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다시 농협 경제 사업부에 전화해도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내 농사의 멘토로 삼고 있는 "텃밭농부"라는 닉네임의 유튜브에 댓글로 문의했다.

그는 냉해를 입은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냉해를 입었거나 씨감자를 자르고 소독을 하지 않아 썩었을 가능성이었다.

어쨌든 올해 감자 농사는 접어야 한다.

이제 시기적으로 늦어서 다시 파종할 수도 없다.


어머니는 썩은 감자가 묻힌 이랑에 땅콩을 담담한 표정으로 심으셨다. 그리고 이웃에 감자 한 박스 얻어 주겠노라고 나를 위로하셨다.

그렇지만 나의 감자에 대한 미안함은 무엇으로 대신한단 말인가?


아침부터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다.

감자는 썩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주말 농부의 주말은 늘 바쁘다.

경제사업소에 들러 마늘, 양파에 방제할 농약을 구매하고 육묘장에 들러 대파와 아스파라거스 모종을 샀다.


먼저 어머니가 대파를 심고 나는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삼색 당근을 파종했다. 당근은 올해 처음 시도해 보는 데 건강에도 좋고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뿌리식물이라 심었다.

씨를 뿌리고 상토를 덮고 짚까지 덮은 후 물을 주고 마무리했다.


이어서 어머니는 강낭콩을 심고 나는 서쪽 귀퉁이에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는 수확 후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심을 때 시차를 두고 심어야 수확기에 오랫동안 맛있는 옥수수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스파라거스 모종 몇 포기를 토질이 좋은 밭 한편에 심었다.


아스파라거스도 올해 처음으로 심어 보는 식용 식물이다.

고급 식재료로 각광받는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맛볼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정성 들여 심었다.

오늘 할 일을 거의 끝내고 나니 또 비가 쏟아졌다.

비가 제때 와주니 물주는 수고는 던 하루였다.


내일은 자두나무와 본가의 복숭아나무에 진딧물약을 쳐야 하고 마늘 양파 밭에 병충해 방제도 해야 한다.

주말 농부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썩어버린 감자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감자야,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