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완벽한 데이트

by 석담

학창 시절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던 고등학교 2학년.

5월의 싱그러움 만큼이나 청춘의 봄 날도 무르익어 갔다.

내년이면 대학 입시 준비로 좋은 시절은 끝나는 걸 알기에

나와 친구들은 그 화창한 봄 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발광을 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매점에 들러 커피우유를 사 먹고 오는 내게 절친 K가 구미 당기는 제안을 했다.

"내일 야자 시간에 P여고 학예회 가자"

좋다고 입맛을 다시며 곰곰 생각해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나름 범생이로 한 번도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친 적이 없는 내게 도저히 야자를 빠져나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야자를 제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방과 후 담임 선생님에게 배가 아파서 조퇴하겠다고 둘러대고 서둘러 교문을 빠져나왔다.

친구 K와 나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버스를 타고 학예전이 열리는 P여고로 향했다.


학예전은 이미 여러 번 가 본 경험이 있었다. D여상 학예전에서 본 그룹사운드 공연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Y여고 학예전의 시화전에서 만난 아리따운 소녀의 얼굴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내가 P여고 학예전에 목숨 걸고 가려고 마음먹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몇 달 전 불교학생회 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녀가 P여고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날 생각으로 버스 타고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P여고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친구 K의 엉덩이를 냅다 차며 이따 보자고 돌려세우고 그때부터는 나 혼자 그녀 찾기 미션에 돌입했다.

얼굴에 자꾸 번지는 행복한 미소를 애써 참아가며.


한 참만에 그녀를 만났고 학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학교를 빠져나와 늦게까지 여기저기 쏘다니며 맛난 저녁도 먹고 꿈같은 봄날을 보냈다.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흐르던지.


다음 날 수업시간 나는 어제 그녀와의 만남에 한껏 고무되어 의기양양 1교시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어젯밤 그녀와의 황홀했던 야간 데이트 생각으로 가슴이 설렜다.

'그녀는 잘 들어갔겠지'

이런저런 그녀 생각으로 행복하기 그지없는 아침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드르륵 교실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까지는.


"너, 이누므 새끼, 일로 나와!

학생이 선생님을 속이고 조퇴를 해서 학예전을 가?"

그 말이 들리는 듯싶더니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그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선생님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덮쳤다.


친구 K는 그날 학예전에서 가방을 잃어버린걸 선생님께 실토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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