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더 이상 노래할 수 없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추억하며

by 석담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건가요?"

해마다 이맘때면 티브이에서, 라디오에서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어김없이 울려 퍼진다.


그즈음엔 내게도 그 노래와 더불어 아스라이 떠 오르는 추억의 그녀가 있었다.

피천득 님의 인연처럼 마지막 세 번째 만남은 없었으면 좋았을 가슴 시린 첫사랑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아미동 변두리의 조그만 절이었다.

국민학교 코흘리개 시절 크리스마스 때면 빵 얻으러 교회에 몇 번 간 적은 있었지만 불교와 인연을 쌓게 된 건 순전히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 덕분이었다.

학교가 불교재단이기도 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그 아미동 변두리 사찰의 법사님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분의 권유로 나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학교 또래들 서너 명과 3시에 열리는 법회에 참석하러 가곤 했다. 그렇게 나는 불교학생회의 일원이 되었다.


매주 절에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 이력이 붙고 반야심경을 술술 외울 수 있게 된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 내 눈을 사로잡은 여학생이 새로 신입회원으로 들어왔다.

그 당시 상업고를 다녔던 그녀는 단아한 자태와 예쁜 외모로 나의 마음을 첫눈에 사로잡았다. 양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이는 매력적인 소녀였다.


그때부터 내게는 매주 절에 가야 하는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그녀를 만나는 건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었다. 일주일이 더디게 흘렀다. 어쩌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에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게 냉랭하게 대했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에게 나는 불교학생회 동기 이상의 무엇도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여름방학 때 불교학생회 동기들은 부산 근교의 사찰로 야유회를 떠났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강변에서 물놀이도 하고, 자갈밭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때 내가 선택한 곡이 그 당시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 그 노래를 열창했고 그렇게 나의 그녀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키워 갔다.

불교학생회를 통해 그녀를 만났던 것이 그녀와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자 나는 입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그녀는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잊고 지냈다.

그 덕분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행운(?)이 따랐다.


신입생 환영회, 엠티에 축제까지, 대학 문화에 심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대학 입학 후 한동안 그녀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2학기가 개강하고 나서야 나는 문득 그녀 생각이 났고 그녀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던 해운대의 옛날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내가 봐도 유치할 정도의 미사여구로 꾸며진 '네가 정말 보고 싶다'는 내용으로 보냈다.

한 달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그녀가 날 떠났나 하고 낙담하고 있던 중에 하숙집 아주머니가 편지 한 통을 들고 왔다.


그녀는 여상을 졸업하고 중학교 서무실에 취업했다는 소식과 잘 지낸다는 간단한 안부를 적어 보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성인이 된 우리의 사랑은 급속히 진도를 나갔다.

방학 때는 부산에서 만나 서면, 남포동, 해운대 등을 전전하며 알콩달콩 사랑의 감정을 키웠다.

우리의 보랏빛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나는 오랫동안 힘들어하고 있었다. 백수 생활하면서 그녀를 만나는 것도 시들시들 해졌고 우리 사이는 점점 소원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전화로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는 소식과 곧 결혼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괜히 화가 나서 그녀가 근무하는 학교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렸다.

마침내 우리는 이별의 시간을 맞았다.

친구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온 친구의 남편 친구랑 피로연 자리에서 눈이 맞았다고 했다.

일찍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녀에게 미래가 불확실한 백수 남자 친구는 아마도 부담이었으리라.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며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 기억 속에서 지워야 했다. 그리고 무능한 나 자신을 한없이 자책했다.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그녀와의 세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 후, 내 기억 속에서 그녀의 이름 석자가 거의 잊힐 무렵 다시 찾아왔다.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내가 누군지 아시나요? 목소리 하나도 안 변했네요.

잘 살고 있지요?"

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지만 불교학생회 동기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OB모임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나 보다.

거기서 내 연락처를 수소문한 그녀에게서 20년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나의 기억은 다시 30년 전의 대학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대전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부터 부모님 이야기, 아들 이야기, 신랑 이야기까지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나는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


그 이후로 다시 불교학생회 OB모임에 가끔 나갔다.

이제는 연인은 될 수 없지만 친구는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에게 가졌던 첫사랑의 마음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면 거짓 이리라.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서로 건널 수 없는 강 반대편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그것도 잠시, 몇 개월 후 그녀의 이혼 소식을 접했다.

내가 간직한 첫사랑의 추억은 슬픈 기억이 되고 커다란 연민이 되어 내 가슴에 진한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제 그 노래는 내게 너무 공허한 노래가 되어 버렸다.


오늘 밤 나는 내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내의 이불을 당겨 덮어주며 아내의 손을 조용히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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