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를 향해 달리는 중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내 너거 밭에 있다, 오늘 여기서 자야겠다"
엄마의 뜬금없는 선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벌써 사흘째 엄마는 30도가 넘는 불볕 더위속에서 밭일을 하셨다.
"밭에 또 뭐 하러 오셨어요?"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처음 주말 농장을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어머니의 소일거리 해결이긴 했었지만 엄마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집착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거의 전업농 수준으로 농사를 지으시려고 하셨고 조금의 병충해 피해도 용납하지 않았고 한 평의 땅도 그냥 놀리시는 법이 없었다.
차가 농막에 도착할 즈음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어머니가 나와 계실 거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둑해진 밭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몸을 바삐 움직이시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그리고 또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빨리 나오소. 밭에 매일 뭐 하러 옵니까?"
어머니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챙겨 차로 오셨다.
나는 어머니를 보자 참았던 마지막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밭 이거 팔고 치울랍니다. 이제 농사 안 지을 겁니다."
어머니를 본가에 모셔다 드리는 동안 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밀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왜 화를 참지 못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청도에 있는 부모님 댁에도 50평 정도의 텃밭이 있다.
그곳에도 온갖 유실수와 야채가 자라지만 손이 크신 엄마에게는 성이 차지 않으셨나 보다.
주말농부 초기에는 주말에 내가 농막에 올 때만 가끔 오셔서 농사일을 도와주곤 하셨는데 언제부터인가 주중 3,4일을 농막이 있는 우리 밭에서 일을 하시곤 하셨다.
지난주에 옆집 할머니가 매일 엄마가 오신다고 하셨을 때 나는 짐작은 했었다. 오늘 내 눈으로 보는 바람에 이런 사달이 나고 말았다.
본가에서 우리 밭까지는 대충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로 팔순의 노인이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먼 거리를 구부정한 몸으로 뒤뚱뒤뚱 걸어 밭에 도착해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종일 일하고 해 질 녘이 돼서야 파김치처럼 축 처진 육신을 이끌고 집으로 가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어머니가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시는 밭에 오지 마시라는 나의 다그침에 엄마는 선뜻 그러 마하고 답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일이면 엄마는 또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로 뒤뚱거리며 천천히 또 쉬지 않고 우리 밭을 향해 오고 계실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