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화(火)나게 하는 세상

by 석담

소리 내어 맘껏 웃어 본 게 언제인지 곰곰 생각해 보니 백만 년 전 구석기시대 얘기 같이 느껴진다.


오래전 TV 프로그램 중에 개그 콘서트라는 코미디 방송이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곧 다가 올 월요병을 잊으려는 듯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무장해제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 가족들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눈뜨기 전에는 화(火)를 몰랐다.

내게 성냄과 분노를 처음으로 가르쳐 준 스승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이고 하이톤의 목소리를 들으면 당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흉내를 내었다. 그렇게 나는 학습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화의 표출 방법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만의 화내는 방법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눈을 내리깔고 방문을 쾅하고 닫고 방에 처박히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크게 하고 눈을 부릅뜨고 인상을 험하게 써야 상대방에게 내가 화가 났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터득했다.


학창 시절에는 거의 화를 낼 일도 자주 없었고 화를 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했었나 보다.

다시 내게 화가 찾아온 것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나서였다.


사장의 화난 얼굴과 상사의 분노에 찬 욕지거리에 나는 다시 분노의 굴레 속에 빠져 들었다.

나의 화는 내 부하 직원들에게 대물림되었고 세습되었다.


사장은 임원에게 화풀이하고 임원은 나의 상사에게 똑 같이 되돌려주었고 마침내 나는 상사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떠안고 내 부하직원을 괴롭히곤 했다.


가끔씩 나는 부하 직원에게 나라도 잘해 주자고 맘을 다잡아 먹곤 했지만 그러한 다짐도 작심삼일이 되고 다시 화가 밀려왔다. 진정한 화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아내와 서로 화를 내는 일이 잦았다.

며칠씩 대화를 단절하고 침묵으로 화를 표현하기도 하고 단식투쟁이라는 엉뚱한 방법으로 화를 대신하기도 했다.


다시는 안 볼 듯이 물어뜯고 싸우며 갈라서자고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다시는 싸우지 말자고 베갯머리송사로 다짐하지만 화는 다시 슬금슬금 우리 몸속에서 기어 나와 내 가슴에 불을 지르고 혈압을 최고조로 올렸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화는 절대 고개 숙이는 법이 없다. 아버지의 화는 팔순이 넘어도 가끔씩 옛 기억을 소환하는지 다시 살아서 꿈틀거린다.

이제는 아버지와 나의 입장이 전도되어 아버지 앞에서 도리어 내가 더 화를 내는 지경이 되었다.

이제 아버지는 나의 화를 두려워하신다.


지금 나는 나의 화의 원인을 갱년기 탓으로 돌리고 있다.

TV 뉴스를 봐도 화가 나고 신문 정치면을 봐도 화가 난다.

통장 잔고를 봐도 화가 나고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봐도 화가 난다.


예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임원은 알 수 없는 우울증으로 한 달간 직장을 쉬었다. 내가 추측해 보니 사장의 화를 견뎌내지 못해 그렇게 된 듯하다.

또 다른 직장동료는 공황장애로 정신과를 다닌다.

그는 대인 기피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달이 났다.

또 다른 친구는 업무 스트레스로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모두가 화를 이겨 내지 못하고 얻은 병인 것 같다.


이제 세상은 화가 만연해 있다.

살아 나을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화를 이겨내던가 내가 찌그러지던가 양단간에 결정을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화를 삭이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어지간한 화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 진정 돌처럼 단단하고 바보같이 멍청한 화 삭이기를 배우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슬며시 웃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