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인문학 관련한 글을 자주 올리시는 어느 작가분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늘 느끼면서도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적확하게 풀어주셔서
많이 공감했다. 그분의 실명은 밝히지 않지만 마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문과를 다녔으면서도 유독 인문학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번을 계기로 인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볼 생각이다.
내년이면 나는 우리 나이로 이순(耳順)이 된다.
귀가 순해지는 나이라는 데 마누라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하고 바른 소리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철이 덜 들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태껏 살면서 소위 '꼰대'라는 말은 별로 들어보지 못한 것 같고 '꼰대짓'도 별로 하지 않았으니 맹탕 허투루 살지는 않았나 싶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어가는 시대에 60년을 살았다는 게 큰 의미는 없지만 아직도 진행형인 내 삶의 변명이나 위로도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59년의 삶에서 나는 여러 번의 위기와 고비를 견뎌내야 했고 극복해야 했다.
그저 일사천리인 탄탄대로의 삶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 큰 병을 얻어 몇 번씩 휴학을 해야 했고 졸업 후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나의 정상적인 삶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나는 사회의 변두리에서 밑바닥 샐러리맨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나 스스로를 자책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나의 꿈 많던 젊은 20대는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내 인생에서 다시 되돌리고 싶은 시기로 그 시기를 꼽는 것은 시작도 못해 본 내 인생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첫 직장도 내 자력으로 들어간 곳은 아니었다.
5촌 아저씨의 회사에 낙하산의 도움을 빌어 들어갔다
나의 평범한 삶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1년 후에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들이 태어나면서 내 삶의 이정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직장과 집을 오가며 월급에 집착했고 취미생활을 하며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 보려고 노력했다.
5년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이직을 했다.
온전히 내 혼자 힘으로 일자리를 찾으러 떠났다.
두서너 곳의 직장을 전전하다 2004년에 두 번째 위기가 또 찾아왔다.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듣고 나는 좌절했다.
열흘이면 퇴원한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수술 후 한 달을 입원했다.
수술 합병증으로 39.5도의 고열로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래도 죽을 운명은 아니었는지 극적으로 살아남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1년여의 휴식 후 지금의 직장에 취업하여 20년째 근무 중이다. 퇴직이 5년쯤 남았다.
퇴직 후에는 귀촌하여 지금 주말농장으로 가꾸고 있는 밭을 일구며 살 계획이다.
그게 내 이력의 전부다. 너무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다. 그래서 나는 요샛말로 나는 대꾸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종종 "나만 왜 이렇게 불행한가?" 혹은 "왜 내게만 이런 나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가?"라며 항상 비관적이고 자기 불만족의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나 동기, 동료들을 질시하고 시샘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자리하고 말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대학 동문회에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아니, 가기 싫어서 의도적으로 가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이나 선배들과 같이하기에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오로시 내 혼자의 몫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왜 좀 더 노력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또 다그칠 것이다.
"당신이 더 열심히 노력했으면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그렇지만 그때 나에게 그건 나의 최선이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성공의 길은 아마도 내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