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불륜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by 석담

5촌 아저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대학 시절 경력을 인정받아 무역과로 발령받았다.

두 살 위의 과장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했으나 경력자로 해외 영업으로는 이력이 붙은 사람이었다.

나는 무역과장의 부하직원으로서 무역의 기초부터 차곡차곡 배워 나갔다.


부서가 해외영업 쪽이라 입사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해외 출장의 기회가 찾아왔다.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6개월에 한 번 꼴로 찾아갔다.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대만, 베트남, 필리핀 등을 번갈아 가면 다녔다.

때로는 과장과 동행하고 어떤 때는 혼자서 출장을 다녔다.

나중에는 인도, 두바이, 이태리, 이집트, 미국, 캐나다까지 출장의 거리가 점점 확대되었다.

주로 박람회를 위해 출장을 다녔으며 외국인들을 자주 접하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중에는 꿈도 영어로 꾸는 희한한 경험까지 했었다. 그러면 영어로 듣는 것이 해결되었다.

3년쯤 지났을 때 대리 직함을 얻었다. 해외영업의 기본인 거래 제의에서부터 오더 수주, 선적서류 작성, 신용장 네고까지 무역의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5년째 되는 해에 내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야 했었다.

항상 든든한 바람막이 같던 무역과장이 그만두고 독립해서 나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말았다.

나는 과장이 떠나는 게 내심 아쉽기도 했지만 후임 과장으로 나설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도 내가 후임과장이 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200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전임 과장의 자리에 웬 낯선 중년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관리부에서는 새로 입사한 신임 무역과장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그제야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입사하고 채 이틀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녀가 대표이사의 여자 친구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며 나는 그 길로 보따리를 샀다.

나중에 그녀 때문에 공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고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후문으로 들었다.


낙하산으로 시작했던 나의 첫 직장 생활은 좋지 않은 기억 속에서 마무리되었지만

나의 기본기와 능력을 키운 소중한 곳이었다.

내가 30여 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시금석이 되었던 회사라 생각하니 지금도 그렇게 미운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유명을 달리한 무역차장이었던 그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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