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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Sep 10. 2023

나무는 착하다

루비에스*,

3년 전 가을 낙만정(樂滿亭)**에서  너를 처음 만난 날

10월의 찬 바람에   가늘게 떨고 있었지.

넌 외톨이처럼  밭 구석에 숨어  못 본 척 나를 외면했었지.

넌 네게 여남은 개의  철 지난 사과 열매를 보여 주었지.

네가 잉태한 작고  반짝이는 열매는 빛나는 너의 지난날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단다.


루비에스,

지난겨울 가지 치기의 아픔을  이겨내고 역겨운 거름냄새를 맡으며  독한 농약을 참아낸 너는 마침내 무수히 많은 너의  풍요를  내게 보여 주었지.

백개도 넘는 사과 열매를 달고  보란 듯이 서 있는 너는 내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마법까지 부렸어.


루비에스,

지난여름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장마에도 네 열매는 너를 부여잡고 그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제 너는 이곳 낙만정의  최고 나무, 최애 사과라고 불러주마.

착하다. 나의 루비에스여!

*루비에르 : 미니 사과의 품종 중의 하나

** 낙만정:  청도에 있는 농장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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