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걷다

사진으로 보는 가을 풍경

by 석담

지난 주말 농촌의 풍경은 넉넉하다 못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감나무 위에 둥지를 튼 늙은 호박은 아래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다. 아마도 서리가 내리고 나면 썩어 문드러지리라.

무턱대고 감나무에 올라가는 무모함에 도전을 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영구'나 '칠득이'가 될지 모른다.

작년 봄에 구기자 서너 그루를 본가에서 캐서 밭 가장자리에 심었는데 시름시름 앓더니 다 고사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봄에 낯선 나무줄기가 농막 앞 데크에 바짝 붙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보더니 구기자라고 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잘 자라도록 지지대도 해주고 가끔씩 밭에 약을 칠 때면 살충제를 한 번씩 흠뻑 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에 대한 보답인지 올해 가을에 엄청난 구기자 열매가 달렸다. 한번 따 내고 일주일 지나서 오니 또 그만큼 빨갛게 익은 구기자 열매가 달려 있었다.

빨간 구기자 열매를 수확해서 정성 들여 말리고 볶아 구기자 차를 만들어 볼 참이다.


우리나라의 토종 허브 중에 방아가 있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서울에서도 큰 마트에 가면 판다고 하니 마니아 층이 좀 있는가 보다. 국산 고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도 사람마다 호불호가 엇갈린다.

주로 추어탕이나 매운탕에 넣어 먹기도 하고 장아찌를 담기도 하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는 된장찌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내가 느끼기에 된장국에 넣으면 더욱 맛깔스러워지는 느낌이다.


꽃밭 중간쯤에 낯선 꽃인지 나무인지 모를 식물이 언제부터인지 자라고 있었다.

평소에 눈썰미가 좋지 않아 꽃이 피고 나서야 마누라가 이야기해서 알았다.

생김새를 보고 이국적이어서 파초쯤으로 여기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칸나라는 식물이다.

칸나는 익숙한 식물인데 이번에 처음 보았다.

'칸나의 뜰'이라는 제목이 머릿속에 맴돈다.

심지도 않은 칸나가 어떻게 우리 밭까지 왔는지 궁금했지만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아마도 다른 꽃씨에 섞인 칸나 씨앗이 우리 밭에 유입되었나 보다.


밭에 호두나무 두 그루가 있다.

특별히 신경 써 주지 않아도 가을이면 먹을거리를 선물했다.

올해도 제대로 신경을 안 썼더니 오래된 호두나무에 호두가 다 떨어지고 하나도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깨보니 대부분 곰팡이가 슬었다. 호두에 핀 곰팡이는 아플라톡신이라는 1급 발암물질로 간독성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곰팡이 핀 호두를 먹지 않으려면 호두가 땅에 떨어지기 전 외피가 벌어지면 수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년에는 제때 호두를 수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처음 꽃밭을 준비할 때 허브 종류가 뱀 퇴치에 좋다 해서 애플민트, 페퍼민트 등을 심었다.

애플 민트가 장인어른이 가끔씩 차로 드신다며 따 가시기는 했지만 거의 방치돼 있었다.

허브 종류의 퍼지는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뱀 퇴치 효과는 별로였지만 향긋한 향을 풍기는 민트가 고맙고 기특하다.


풍선 모양으로 생긴 씨앗이 온 밭에 날려 풍선초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로즈메리와 풍선초 천지가 되어버린 꽃밭을

걸을 때면 조심히 걸어야 한다.

한 포기라도 밟으면 마누라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지 모른다


나팔꽃 닮은 하얀 꽃은 양금화라는 꽃인데 모양에 걸맞지 않게 이름은 악마의 나팔이란다.

위를 향해 피어서 악마의 나팔이 되었다니 아이러니하다.

아래를 향해 핀 꽃은 반대로 천사의 나팔이다.

학명으로는 흰 독말풀이라고 불리는데 마취제 제조에 쓰이는 독초란다.


올해 봄 로즈 메리가 꽃밭 전체를 도배했다.

뱀 퇴치 특효 허브로 알고 심었지만 효과는 의심이 가고 날리는 씨앗 덕분에 한 해가 지나자 온 밭에 씨를 뿌려 놓았다.

꽃잎을 말려 차를 만들어 마신다는데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다.


부추가 꽃이 피고 씨를 맺었다.

부추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채소이다.

부추즙, 부추 무침, 부추전 등 부추로 만들어 먹을 게 많다.

부산에 살 때는 부추라 불렀다. 엄마는 아직도 부추라 하신다.

돼지 국밥에 넣어 먹던 부추가 생각난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결명자로 구수한 결명자차를 맘껏 즐겼다.

올해는 결명자가 우후죽순 같이 자라났다.

콩밭에도 올라오고 가지 밭에도 올라오고 수돗가에도 자랐다. 결명자 수확에는 손이 많이 간다.

귀차니즘으로 조금 따다가 던져두었는데 주말에 보니 어머니가 알뜰이 수확해 두셨다.

잘 볶아서 끓여서 마시면 눈이 좋아진단다.

마음의 눈도 좋아지면 좋겠다.


마지막 사진의 푸른색 꽃 이름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뿌리 근처의 잎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 치커리 꽃이다.

쌈으로만 만나는 치커리에 이렇게 예쁜 꽃이라니.

채소를 키우는 목적은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꽃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식물이 쑥갓이다.

아내는 쑥갓꽃 보는 것을 먹는 것보다 좋아한다.

가을이 깊었다.

배추와 무가 잘 자라고 시월 말에는 마늘과 양파도

심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또 시월의 마지막 밤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