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며 가을을 보내다

by 석담

아침마다 출근을 하면 마당을 쓴다.

가을이 오니 그 횟수가 잦다.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는 다음날은 마당 온 천지를 낙엽이 도배를 한다.

낙엽을 쓸면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가 문득 떠올랐다.

소설가가 낙엽을 긁어모을 때의 심정이 낙엽을 쓸던 내 마음이랑 닮아 있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교실에서 그 수필을 공부하며 친구 놈이 하던 시시껄렁한 농담이 생각난다. "낙엽을 그리 태우면 환경오염시키는 거 아닌가?"

친구의 그 시시껄렁한 농담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구 온난화니, 탄소 중립이니 하면서 환경오염의 결과가 슬슬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가을걷이를 하고 나오는 낙엽이나 나뭇가지를 불에 태우는 풍경을 심심찮게 본다.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른다.

소녀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담쟁이를 그린 늙은 화가는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는 줄거리가 여운을 남긴다.

가을이라서 가능한 줄거리이다. 낙엽이 있어서 마지막 잎새도 가능했던 것이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중략>"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이다.

낙엽을 이렇게 멋지게 노래한 시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지난 주말 어머니랑 주말농장에서 둘만의 데이트를 했다.

들깨도 털고 무도 솎아 냈다.

작년에 팔순을 지낸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은 밭일이다. 힘들다면서도 밭일에 열심이신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가 낮에 전화하셔서 콩잎 따러 밭에 오시겠다는 걸 힘든데 뭐하러 오시냐며 화를 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어머니의 취미를 방해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차를 몰아 어머니를 밭으로 모시고 왔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와 밭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나에게도 큰 행복이다.

오래오래 어머니가 지금처럼 내 곁에 계시면 좋겠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콩잎 짠지를 해 주시려고 콩잎을 따셨다.

노랗게 물든 콩잎만 골라서 한 주먹을 따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맛있는 콩잎 짠지를 마음껏 즐겼다.

가을은 눈도 입도 즐거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