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후 생활

by 석담

불교에서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여섯 가지 감각기관 - 눈, 귀, 코, 혀, 몸, 마음 -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곱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곱해서 108 번뇌라고 불렀다.


불교학생회 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맹목적으로 외웠던 반야심경이 슬기로운 노후 생활의 중요한 근간이라는 것을 오늘 문득 깨달았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장인어른이 계신다.


눈(眼)은 구백 냥이라는 광고를 언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눈이 나쁘다. 노안을 넘어 안경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 나도 안경을 쓴 지가 오래되었으니 부전자전인 듯하다.


몇 달 전에 눈이 너무 뻑뻑하고 불편하다 하셔서 동네병원에 내진하니 각막 손상이라 회복이 힘들다 했다.

놀란 가슴에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니 각막 손상은 아니고 체질적으로 눈이 뻑뻑해지는 상태라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설명과 몇 달치 안약만 타서 돌아왔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안경을 벗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데도 아버지는 항상 안경을 쓰신다.

눈의 불편이 아버지 노후의 큰 걸림돌이다.


어머니께 귀(耳)에 난청이 온 것은 아마도 오랜 직장 생활로 소음에 노출된 직업병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화내듯이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내 말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소통에 애로가 많지만 한사코 보청기는 싫다 하신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귀가 어두워 내가 직접 보청기를 해드렸는데 며칠 사용하시더니 불편하시다고 내던져 버리셨다. 모전여전인가 보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의 입맛(舌)은 완전히 정반대다.

아버지는 육식을 아주 좋아하신다. 거의 매 끼니에 돼지고기가 상에 오른다. 물론 구이 형태는 아니지만 돼지 김치찌개나 된장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던지 해서 구색을 맞춘다. 야채 종류는 거의 드시지 않는다.


장인어른은 채식주의자에 가깝다.

육식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고 상추와 깻잎을 위주로 한 나물 반찬을 꼭 챙겨 드신다. 육류는 단백질 섭취를 위해 가끔 드시는 정도다.


장수를 위해 노인들은 육류를 꼭 섭취해야 한다는 주의와 채식 위주의 식단이 낫다는 주의 중 어떤 게 맞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당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드시는 게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


부모님과 장인어른 모두 팔순을 넘긴 몸(身)이시다.

주말에 본가에 가면 아버지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좋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면 옆에서 어머니가 나도 안 아픈 데가 없다며 거드신다.


아내가 장인어른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 항상 어디가 안 좋고 아프다는 말씀을 늘 하신다. 아내는 처가에 다녀오는 날은 항상 우울해한다.

그래도 다음 날 뵈면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하게 산책을 다니신다.


어머니가 40년 가까이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나서 우울증이 왔다. 마음(意)의 병이 온 것이다.

결국 병원에 외래 통원치료를 받고 나서야 어머니의 우울증은 사라졌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또 우울증이 왔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주 여린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에도 세 분의 비슷한 일상을 보면서 슬기로운 노후 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눈과 귀와 입맛과 건강한 몸과 마음이었다.

불교에서 육 근(六根)이라 불리는 '안, 이, 비, 설, 신, 의'가 슬기로운 노후 생활의 시작이기도 하고 번뇌의 원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