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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26. 2023

첫사랑의 아들 결혼식에 부조를 하다

마누라가 알면 화낼 일이지만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모바일로 부조금을 보냈다.

뜨겁던 정열도 차갑던 애증도 떠난 보낸 지 오래전의 일이다.

그녀는 나를 오랜 벗이라 했다.

그래.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치열했던 젊은 날을 함께 했던 첫사랑에 대해 이 정도의 성의조차 보이지 못한다면 어찌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첫사랑이라 하겠는가?


82년 봄, 불교학생회 동기로 처음 만난 그녀는 편안한 인상에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녀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고  벙어리 냉가슴 같은 속앓이만 하다  고등학교 3년이 훌쩍 지나갔다.

가을 야유회 때 그녀 앞에서 부른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대학  입학 후  자연스럽게 멀어진 우리는 대학교 2학년 때 다시 해후하면서 성숙된 만남을 이어갔다.

어느 날은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갔었고, 또 어떤 날은 버스를 타고 진주 촉석루를 찾았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세상에는 우리 둘만이 있는 듯했다. 지구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가 끓여 준 그저  그런  미역국도 맛있다  하며 먹었고  매일 카페의 후미지고 어두운 자리를 찾아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졸업 후 직업도 없이 살아가던 나는 미래도 비전도 보이지 않는 그저 백수일 따름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후 학교 행정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그녀는 친구 결혼식에서 신랑 친구와 눈이 맞아 미래를 약속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부산일보 앞에서 그녀와 작별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내 뺨을 스치던 겨울바람의 차가움은 아직도 그날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어언 20년이 흘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가정을 이루어 토끼 같은 딸과 여우 같은 마누라 하고 살던 내게 한 통의 모르는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천안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는 목소리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이혼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를 버리고 떠난 그녀가 차라리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그 뒤로 불교 학생회 동기들의 OB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다. 그녀도 힘든 여건에서도 꼭 참석했다. 그녀의 마음도 차갑게 식었고 내 가슴의 모닥불도 꺼진 지 오래이다.

그녀 말처럼 난 그저 그녀의 오랜 벗이고 싶다.

서로 격려해 주고 힘을 주는 오래된 친구처럼 말이다.

언젠가  모임 때 동기들 간의 진실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우리의 그 뜨거웠던 젊은 날에 대해서 물어보았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 시절의 일들을 하나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여자들은 선택적으로 기억을 하는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는 지워 버리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문득 학교 때 배운 피천득의 인연이란 에세이가 떠오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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