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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06. 2023

전지적 해피 시점

6 :  00  a.m.

의자 위 폰이 요란하게 울리자 내 옆에서 자던 주인아저씨가 비시시 일어나서 화장실로 간다.

어젯밤에는 아저씨의 몸부림으로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무지막지한 팔뚝에 등허리 타박상이라도 입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주인아저씨가 화장실에 가고 난 후에 나도 덩달아 오줌이 마려워졌다. 베란다에 있는 배변  패드 위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았다.

아저씨는 젖은 머리와 멀끔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머라고 떠든다. 머라고 씨부리 샀노?

입모양을 보니 해피라고 하는 듯하다.

피곤해 보이는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다.

나는 일부러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딴청을 했다.


아저씨는 식탁에 앉아 구운 샌드위치에 치즈를 발라 입에 구겨 넣고 있다. 그리고 드립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있다. 빵조각이나 시리얼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몇 번이나 식탁 주변을 어슬렁 거렸지만 한 번도 흘리는 법이 없다. 무심한 아저씨 같으니라고!


매일 아침 똑같은 풍경이라  다시 보기처럼 매일 똑같은 그림이다.

나는 이제 슬슬 침대에서 내려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저씨가 출근하고 나면 아줌마가 자고 있는 작은 방으로 간다.

작은 방 문이 닫혀 있으면 내가 열릴 때까지 긁어대니

아저씨가 출근하면서 문을 열어두고 갔다.

센스쟁이 같으니라고!

아주머니는 오늘도 노트북의 인강을 틀어놓고 취침 중이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불을 켜 놓고 잔 적도 있다.

나는 그녀 옆에 조용히 드러누워 그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7시가 넘으니 아주머니도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그녀도 나를 보며 해피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도 행복한가 보다. 그녀도 식탁에 앉아 아저씨처럼 우유에 시리얼을 타서 먹고 있다.

그녀는 출근하기 전 대부분의 시간을 화장하면서 보냈다.

아주머니는 출근하기 전 나를 한번 안아주고 갔다.

아저씨보다는 정이 많은 아주머니이다.

아주머니가 출근하고 나는 열린 언니의 방으로 쳐들어 갔다. 언니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언니는 12시 출근이라 일어날 기색이 안 보인다.

나는 나의 부드러운 혀로 언니의 볼을 핥기 시작했다.

언니는 '해피'하며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진득하게 언니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언니는 마침내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를 데리고 강변에 산책을 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파트 밖 화단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응가를 하고 말았다.

산책 가는 길에는 항상 있는 일이다.

언니는 싫은 내색도 없이 나의 응가를 치워 종이가방에 넣었다.


강변에는 벌써 많은 친구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신나게 달리고 킁킁 거리며 냄새 맡으며 산책을 즐겼다.

언니가 목욕해야 한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더 있고 싶었지만 목줄에 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너무 좋아서 나오기 싫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한방에 싹 가시는 듯했다.

언니는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어로 털이 뽀송뽀송하게 해 주었다.

언니가 출근하고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다.

문득 나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이 집에서 지낸 지 12년이 되었다.

즐거운  날도 많았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제일 좋았던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두 언니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서울에 있는 작은 언니는 방학 때만 와서 너무 보고 싶다.

아직 나른한 오후 시간 잠이나 자야겠다.

저녁 7시가 되면 주인아저씨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흐드러지게 낮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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