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라이킷
20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Aug 20. 2024
My Soul T-Shirt
큰 딸이 스물일곱이니 그 정도의 연륜은 된 듯하다.
신혼 초에 아내가 나를 위해 사
준 티셔츠 이야기이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C사의 스트라이프 무늬가 선명한
녹
색
티셔츠였다.
아내와
1997년에 결혼을 했으니 2000년도
이
전에 산
티셔츠임이
틀림없다.
티셔츠
하나만 20년 넘게 입었으니 의류 제조업체 입장에서 보면 요주의 소비자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옷 잘 못 입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옷에는
젬병
이라 대충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아내가 사준 그 티셔츠는 유독 열심히 입고 다녔던 것 같다.
2012년 처가 식구들과 여수엑스포에 갔을 때도 입었고 2017년에 가족들과 싱가포르 해외여행 다녀왔을 때도 입었다.
이 옷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열심히 입었길래 10년도 더 된 불교학생회의 OB모임 동기들도 이 옷을 기억하며 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이 티셔츠를 얘기하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너 또 그 옷 입고 왔네"
하며 웃으며 놀리거나
우스개
소리를 했다.
배냇저고리도 아닌 그냥 티셔츠일 뿐인데 나는 왜 이리 오랫동안 마르고 닳도록
그 티셔츠를
입고 다녔을까?
그것은 내게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이다.
아동이 양육자의 상을 대신하는 것으
로
특별하게
들고
다니는
애착물건
같은 것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입는 옷
이야 길어도
대개
삼사 년이 지나면
시들시들해지고
싫증이 나서 재활용품통에 넣거나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잘 입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옷이 너무 너덜너덜
해져서
밖
에 입고 나가기가
민망해
비슷한 디자인으로 새로 하나 사려고
C사의 쇼핑몰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닮은 스타일의
비슷한
옷을
찾지
못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 아내는 다른 제조사의 다른 디자인의 옷들도 여러 번 사주었지만 이 옷만큼 길게 입지는 못했다.
이 옷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이 티셔츠는 이제
외출복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의 밤을 함께하는 애착 잠옷이 되었다.
여전히 나의 곁을 떠나지
않
고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우리 집의 마룻바닥을
누비는
걸레나
발닦이로
남
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티셔츠는 내 땀과 체취가 배어 있는
내
삶의 흔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걸린 운동선수의 유니폼 같이 소중하다.
나의 청춘과 중년, 그리고 노년을 함께할 낡은 티셔츠에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 본문의 사진은 여럿이 같이 찍은 사진으로 AI 기능을 사용하여 편집하였습니다.
keyword
소울
셔츠
아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