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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Aug 20. 2024

My Soul T-Shirt

큰 딸이 스물일곱이니 그 정도의 연륜은 된 듯하다.

신혼 초에 아내가 나를 위해 사준 티셔츠 이야기이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C사의 스트라이프 무늬가 선명한  티셔츠였다. 아내와 1997년에 결혼을 했으니 2000년도 전에 산 티셔츠임이 틀림없다.

티셔츠 하나만 20년 넘게 입었으니  의류 제조업체 입장에서 보면 요주의  소비자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옷 잘 못 입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옷에는 젬병이라 대충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아내가 사준 그 티셔츠는 유독 열심히 입고 다녔던 것 같다. 2012년 처가 식구들과 여수엑스포에 갔을 때도 입었고 2017년에 가족들과 싱가포르 해외여행 다녀왔을 때도 입었다.

이 옷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열심히 입었길래 10년도 더 된 불교학생회의 OB모임 동기들도 이 옷을 기억하며 나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이 티셔츠를 얘기하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너 또 그  옷 입고 왔네"

하며 웃으며 놀리거나 우스개 소리를 했다.


배냇저고리도 아닌 그냥 티셔츠일 뿐인데 나는 왜 이리 오랫동안 마르고 닳도록 그 티셔츠를  입고 다녔을까?

그것은 내게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이다.

아동이 양육자의 상을 대신하는 것으특별하게 들고 다니는 애착물건 같은 것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입는 옷이야 길어도 대개 삼사 년이 지나면 시들시들해지고 싫증이 나서 재활용품통에 넣거나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잘 입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옷이 너무 너덜너덜 해져서 에 입고 나가기가 민망해 비슷한 디자인으로 새로 하나 사려고

C사의 쇼핑몰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닮은 스타일의 비슷한 옷을 찾지 못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 아내는 다른 제조사의 다른 디자인의 옷들도 여러 번 사주었지만 이 옷만큼 길게 입지는 못했다.

이 옷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

이 티셔츠는 이제 외출복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나의 밤을 함께하는 애착 잠옷이 되었다.

여전히 나의 곁을 떠나지 고 나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우리 집의 마룻바닥을 누비는 걸레나 발닦이로 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티셔츠는 내 땀과 체취가 배어 있는  삶의 흔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걸린 운동선수의 유니폼 같이 소중하다.

나의 청춘과 중년, 그리고 노년을 함께할 낡은 티셔츠에 감사와 경의를 보낸다.



♧ 본문의 사진은 여럿이 같이 찍은 사진으로  AI 기능을 사용하여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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