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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Sep 22. 2024
아버지가 다시 걷는 꿈을 꾸었다.
올해 여름은 정말 길고도 더웠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떠들어대던 내게도 힘든 계절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아버지의
낙상
으로 정신없이
병원을
들락거리
느라 방치하다시피
내버려 둔 주말 농장에는 풀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빼곡히 자라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끔씩 잠깐 텃밭에 들르면 예초기를 들고 무릎까지 자란 잡초를 잘라내는 게 고작이었다.
일주일 후에
보면 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초작업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고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나서 우리 부부는 또 일주일간 캐나다로 떠나 버렸다.
캐나다에서 돌아왔을 때 여전히 계절은 아직도 여름이었고 가을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아버지는 정형외과를 퇴원하시고 재활 병원으로 가셨다. 진단서에는 10주간 절대 안정이 필요하고 체중부하가 걸리는 걷기 운동은 당분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으런지를.
그렇지만 믿고 싶었다.
다시 아버지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고.
어제저녁 늦게 청도의
농막으로
달렸다.
낮부터 내리던 비가 밤새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꿈속에서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오시는
걸 보았다.
꿈은 반대라지만 나는 아버지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침에 눈을 뜨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회색빛 하늘이다.
그동안 내버려 둔 밭 여기저기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느새 벌어진 탐스러운 밤송이, 빨갛게 익은 대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달린 호두알, 그리고 고구마, 단호박, 땅콩까지, 자연은 게으른
농부에게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풍성하게
베풀어 주었다.
아버지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가족 묘터에도 여전히 바랭이가 발 디딜 틈 없이 자라고 올해 봄에 심어둔 잔디는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는 내게 밭에 가면 잔디밭에 잡초 좀 뽑으라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직은 때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기적처럼 다시 걸어서 환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꼭.
※
바랭이
: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잡초이다.
밭
, 밭둑, 길섶 등에서 흔히 자란다. 땅 위를 기면서
줄기
밑 부분의 마디에서 새 뿌리가 나와 아주 빠르게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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