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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Sep 19. 2024

아버지가 병상에서 보내주신 해외여행

캐나다 로키 여행기

캐나다 로키 여행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의 중요한 한 가지였다. 지난 5월  나는 아내에게 추석 무렵 로키여행을 떠날 거라고 흘리듯 이야기하고 5박 7일 캐나다 로키투어 패키지 상품을 덜컥 계약해 버렸다.

퇴직 후에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환갑을  지나서 10시간이 넘는 비행과  며칠간의 지속적인  버스여행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은 흘러 여행 비용 잔금을 치르고 난 직후인 지난 8월 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고관절 골절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의 입원과 기약 없이 연기된 수술 소식에 나는 여행 계약서의 약관을 읽어보며 여행을 취소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염없이 미뤄지던 아버지의 수술 날짜는 마침내 9월 6일로 잡혔고 그날은 여행 출발일을 닷새 앞둔 날이었다. 여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결심이 굳어질 무렵 다행히 아버지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버지의 수술이 성공적이라는 소식에 나는 다시 혹시나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인간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나흘이 지나 아버지가 후유증 없이 잘 회복해 나가시는 걸 보고서 나는 여행을 취소해야겠다는 마음을 아예 접었다.


여행 떠나기 전날 아내와 둘이서 아버지를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기운내시라 부탁드리고 돌아왔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우리 부부는 생애 처음 캐나다 로키 여행길에 나섰다.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페이토 호수, 보우 호수, 레이크 루이스,  모레인 호수, 투잭호수, 에머랄드 호수의 풍경

9월 11일.

잔뜩 찌푸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해가 떠 있었다.

버스의 흔들림  속에서 공항까지 다섯 시간의 여정도 지루하지 않았다.

단체 여행이라 기내에서  이산가족이 될뻔한 우리 부부는 운 좋게도 자석같이 옆자리를 배정받았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고, 두 번의 식사와 두 편의 영화 보기가 끝날 무렵에야 지루한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애틀의 시애틀 터코마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사람 좋은 표정의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었다. 별다방 1호점이라는 곳과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또다시 기나긴 버스여행에 올랐다.

마침내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통과해서 밴쿠버에 위치한 호텔에 여정을 풀었다.


그다음 날부터는 시차와의 싸움이었다. 모두들 잠든 시각에 말똥말똥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비몽사몽의 아침에 버스에 올라타고 3박 4일의 로키 투어 기간 동안 무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으니 실로 버스라는 것이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첫째 날은 브라이덜 폭포와 캐내디언 로키의 정상인 롭슨산을 조망했다.

둘째 날은 설상차를 타고 빙하에 덮인 아이스필드를 거닐었다. 수천만 년의 신비를 품은 듯한 빙하 위를 거닐며 더위에 고생하는 직원들한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 투어는 계속되었고 시차로 인한 수면부족을 극복 못한 우리 부부는 버스가 이동할 때마다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정신없이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온 주변의 나무가 검게 불타 있었다.

가이드는 지난여름 화재로 인해 다 불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자연 발화로 인한 재해라니 믿기 힘들었다.

우리는 화재로 투어가 중지된 재스퍼를 지나 밴프에 도착했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호수 투어가 이어졌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페이토 호수, 보우 호수, 김연아 선수가 광고를 찍은 레이크 루이스, 그리고 한 폭의 그림 같은 모레인 호수 조망은 그동안 달력에서  보던 한 폭의 풍경화를 보여주었다.

보우 폭포, 투잭호수와 넌덜머리를 배경으로 우리 부부는 수도 없는 인증숏을 찍었다.


로키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가늘게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곤돌라를 타고 로키의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에메랄드 호수로 향했다.

네이처 브리지를 마지막으로 로키투어를 끝내고 밴쿠버로 다시 돌아왔다.

밴쿠버에서 간단하게 시내 관광을 마치고 처음 투숙했던 호텔에서 우리 부부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나는 2009년에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6개월을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아내를 초청해서 같이 여행을 하지 못한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너무 어려서 감히 여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이번 기회에 나는 아내를 위한, 또 나의 버킷리스트를 위한 중요한 캐나다 로키 여행을 완수했다.

아내는 내년 추석 때는 연휴가 기다며 유럽으로 떠나자고 벌써 김칫국을 마신다.


아마도 우리 부부의 해외여행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여행에서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면 남는 장사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아버지의 병상 투혼 덕택에 우리 부부는 즐거운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이제 아버지의 회복과 쾌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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