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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23. 2024

아버지의 선택

나는 아버지랑 친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무서웠고 어려웠다.

고압적이고 자식들에게 자상하지 않은 꼰대 같은 아버지가 미웠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커서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런 두려움이나 미움보다는 측은함이 더 많았다.

이제는 오히려 아버지가 나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하신다.

본가에 가면 아버지는 항상 내게 밥 먹으라 하시고 챙겨 주려고 하시지만 나는 여전히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어릴 적 내가 느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나 보다.


아버지가 병원에 두 달 넘게 입원해 계시니 엄마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동생이 주말마다 모시고 아버지 면회를 다녀왔다.

어머니의 표정은 항상 어두웠고 잘 드시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지난 주말에 청도 본가에서 어머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면서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맘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하고 말았다.

"집에 계실 때는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고 입에 달고 사시더니 울기는 왜 웁니까?"


아버지가  재활요양병원으로 가시고 코로나 격리가 끝난 후 면회를 다녀오신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태가 좀 좋아지신 거 같다며 안심하셨다.

동생은 잠도 잘 못 주무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정신과에 들러 상담도 하고 안정제 처방도 받게 해 드렸다.


오늘 퇴근 무렵 어머니께 전화했더니 아버지 면회를 가보라 하신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버지께 면회 가면 항상 좋은 병원으로 옮겨서 빨리 낫게 해달라고 조르신다.


이제는 아버지의 시간이다. 아버지의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죽을힘을 다해 재활에 성공해야 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그렇지 않고 중도에 포기한다면 계속 병원을 떠돌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와 친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예전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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