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너나 할 거 없이 김장준비로 다들 바쁘다.
특히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첫추위에는 주말에 날을 잡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김장하느라 북적대던 기억이 난다. 아니, 작년까지는 해마다 그랬던 것 같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김장하러 오라는 연락이 없다.
김장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추진할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장모님이 우리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김치는 좋아 하지만 김장 담그는 날은 솔직히 싫어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김장하자고 처가에서 연락이 오면 회사에 출근해야 된다며 핑계를 대거나, 주말에 약속을 일부러 만들어 혼자 쏙 빠지기도 했다.
처가에서 하는 김장이 우리 가족의 월동을 위한 중요한 반찬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마지못해 김장에 불려 나가는 날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를 못 잡고 빙빙 돌다가 남자 손이 필요한 중량물을 옮기는 일 조금 해주고 시간 때우는 게 고작이다.
어쩌다 양념 무치는 일이라도 할라치면 대충 흉내만 내다 내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김장이 끝난 후 뒤풀이에서 내 역할(?)이 빛을 발한다.
김이 설설 나는 수육과 갓 담근 맛깔난 김장김치와 더불어 막걸리 한잔의 추억은 김장의 백미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게 처갓집에서 매년 있었던 김장 담그기가 올해부터는 휴업이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다시는 그 장면이 재연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 왜 좀 더 열심히 김장을 도와 드리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고춧가루 묻은 얼굴로 웃고 떠들며 가족들과 보냈던 그 시간들이 행복이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 본다.
다시 김장 담그기 행사에 불러 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도와 드릴 수 있을 텐데.
장모님이 떠나시면서 김장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김장 담그기와 같이 찾아왔던 그 행복한 순간들도 저만치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오늘 본가에 어머니가 담가 주신 김치를 가지러 간다.
너무 편한 일상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많이 힘드셨을 게다.
내년부터는 청도 본가에서 김장 담그자고 말씀드려야겠다.
예전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손도손 김장을 해 봐야겠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사랑을 다시 찾아볼 것이다.
덤으로, 김장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장모님의 모습도 반추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