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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보며 꿈을 생각하다.

by 석담

"저 하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늙어서도 그러하리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는게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하루하루가

자연의 숭고함 속에 있기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실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라는 시를 읽으며 가슴 설레던 기억을 오늘 다시 떠올렸다.

초가을 날씨 답지 않게 낮에는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저녁의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당직이라 동료들이 모두 떠난 사무실 복도에서 바라본 하늘에 신기하게도 선명한 무지개가 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무지개인가?


내가 배운 무지개의 기억은 또 있다.

무지개를 좇아 온 세상을 떠돌다 결국에는 늙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다는 줄거리로 허황된 꿈을 갖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글이었다.


10대나, 20대에 가졌던 나의 꿈은 나이가 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가정이나 돌보고 편안한 노후를 준비하는 게 최선인 척했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 나의 노력 부족과 게으름을 되돌아보기보다는 "왜 내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왔을까?" 하는 자책과 염세주의, 그리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막연한 과거 회귀적인 헛된 망상만 늘어놓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무지개를 좇아 떠돌던 아이에서 늙은이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또다시 내가 추구하던 그 무지개를 좇으라고 닦달하고 있다.

내가 무지개를 좇아 떠돌던 그 40여 년의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배 나온 머리 허연 초로의 아저씨로 돌아왔다.


그래도 내게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두 딸이 있으니 괜찮다.

그리고 팔순의 아버지와 허리 구부정한 어머니도 가까이 계신다.

이번 추석에 만날 두 딸들이 기다려진다.


짙게 하늘에 드리워진 무지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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