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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 결실은 최고의 찬사이다.

by 석담

주말농부로 지낸 지 4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어지간히 이력이 붙을 만도 한데 여전히 초보농부 딱지가 낯설지 않다.

올해 농사도 그리 녹녹지 않다.

고추는 병이 들었고 몇 그루 안 되는 감나무의 감들도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지 않았다.


지난봄부터 열심히 약치고 돌보았지만 역시 농사는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새삼 농부님네들이 대단하게 생각되는 요즈음이다.

대추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하나는 부산에서 어머니가 옮겨와 심은 토종 대추인데 올해는 유난히 알이 굵고 벌레도 먹지 않아 수확이 괜찮을 것 같다.

아침에 빨갛게 익은 것들만 골라서 몇 개 따서 먹어보니 맛이 달고 좋다.

심은지 3년이 지난 사과대추나무는 열매가 달리지 않아 속을 썩인다.

잎은 무성하고 키도 나보다 크게 자랐는데 나의 정성이 부족한지 아직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며칠 전에 대추가 하나 달렸길래 기쁜 마음으로 사진까지 찍어 두었는데 오늘 아침에 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첫사랑과 헤어진 것만큼이나 서운했다.

미니사과는 달리기는 많이 달렸지만 썩은 사과가 태반이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한 잎 배 물어보니 벌레 먹은 속을 드러낸다.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옛 어른들의 농담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두나무 두 그루는 효자 과실이다.

특별히 약을 치거나 돌보지 않아도 해마다 우리 가족이 먹고도 남을 견과를 내어준다.

웰빙과실로 인기 있는 호두는 아내가 특별히 챙긴다. 항상 호두까기로 속을 발라 락앤락에 보관하고 챙겨 먹고 있다.


땅콩은 낙화생이라 불린다.

나는 땅콩농사를 짓고 나서야 낙화생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땅콩 꽃이 피고 나면 씨방이라는 것이 땅속으로 내려가 그곳에 땅콩이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낙화(落花生)이라 불리는 것이라 한다. 땅콩 역시 견과류의 대표적인 식품이라 호두와 견줄만하다.

어제 어머니는 내가 농막에 도착하기 전날 이미 땅콩을 몽땅 수확하여 마루에 널어놓으셨다.

나의 땅콩 캐는 재미를 앗아가서 아쉽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다.

팔순의 노모가 밭에서 힘든 일은 하는 것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내일 아내와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고구마는 감자와 달리 땅속 깊이 묻혀 있어 캘 때는 남자 일꾼이 꼭 필요하다.

삽으로 흙을 퍼올리면 주렁주렁 달려 딸려오는 고구마 수확은 아주 재미나다.

결명자는 뱀이 싫어해서 뱀 퇴치도 되고 눈에 좋다 해서 처음 심었는데 얼마나 번식력이 좋은지 밭 전체에서 자란 결명자 열매가 지천이다.

내손으로 일일이 수확해야 할걸 생각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수확한 결명자를 프라이팬에 타지 않게 잘 볶아 우려낸 결명자차는 그 맛이 일품이다.

농부가 가을을 기다리 듯 나도 결실의 계절 가을을 기다려 왔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서 배부르고 밭에서 튼실하게 자라나는 김장배추도 나를 즐겁게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 먹는 게 더 싸게 칩니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사서 먹으면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소소한 수확의 기쁨, 결실의 뿌듯함까지는 살 수 없지 않은가?

다가올 추석에는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로 가족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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