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게 남았을 때 우리는 한 번씩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을 손꼽아 보니 몇 가지로 뚜렷해진다.
부모님, 자식들, 직장생활, 그리고 은퇴 이후의 삶 등이 그것이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건재하시니 큰 걱정은 없다. 건재하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부모님의 성격이 많이 달라 사이좋은 부부라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남남으로 사실 분들은 아닌 듯하다.
우리 형제들이 자주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도무지 두 분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두 분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평생을 통해 고착화된 성격과 고집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것은 아이러니였다. 요즘 부부들 같으면 이혼하고도 남았을 정도인데 저렇게 꿋꿋하게 같이 사시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두 분을 보노라면 사람의 본성은 바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의 절정기에 접어든 두 딸들은 대견하다.
뒤늦게 향학열에 불타 오르는 첫째 딸과 이제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둘째까지 한결 같이 우리 부부의 기대주이다.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진로를 잘 개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부부의 역할은 거기까지이기를 나는 내심 바라고 있다.
대학 교육까지 잘 마치도록 해주면 부모로서의 도리는 다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도 그렇게 자랐고 내 딸들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자식의 유학을 위해 기러기 생활을 하는 부부를 종종 본다.
부부의 인생과 자식의 성공이 양립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줄곧 맞벌이 중이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맞이 할 것이다.
작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농사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작년에는 큰 수확이 없었다. 한 해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올해는 제대로 된 농사를 준비 중이다.
아내는 귀촌에 대한 생각이 젊었을 때와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퇴직 후에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자면 각자 좋아하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농사를 짓든, 꽃을 가꾸든지 간에 내가 즐기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노년이 행복할 것이다.
나는 글쓰기라는 소중한 취미를 이미 마련해 두었다.
이제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딸들이 학업을 쉬지 않고 이어 간다면 어쩌면 퇴직이 기약 없이 늦어 질지도 모른다.
아내는 애들 졸업할 때까지 그만둘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며 엄포를 놓는다. 일전에 행복의 조건에서 한번 언급한 이야기지만 나의 행복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행복을 위한 필수 조건이 직장 생활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행복한 노후를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내 인생의 행복을 책임져 줄 이는 나 자신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