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좋아서 다니는 직장인, 그리고 출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처자식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터에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불태우고 있다.
그 고달프고도 힘든 직장생활의 굴레를 혹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사람들은 때때로 로또 판매점 앞으로 모여든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만약에 1등에 당첨되면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사장에게 보기 좋게 사직서를 던지고 회사를 떠나는 상상도 마음대로 해 본다.
그렇지만 상상은 상상으로 끝나고 현실은 냉혹하다.
오늘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깨어 냉수 한 사발 들이키고 스트레스받으며 하루를 보낼 직장으로 향한다.
치열한 하루를 살고 해가 저물고 나서야 고단한 몸을 일으켜 귀가 길에 오른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하루의 피로를 지워 버린다.
몇 번의 이직 끝에 마지막 종착역이다 생각하고 자리 잡은 직장이 벌써 18년이 되었다.
강산이 두 번쯤은 바뀌어야 할 시간이지만 나는 그대로이다.
내 직무가 무엇이고 나의 할 일은 무엇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내 직무가 되었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나가라"
이곳에서 18년 동안 일하면서 이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왜 나는 한 번도 나가겠다고 얘기하지 못했는가?
그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예스맨으로 살아왔음을 알았다.
일하기 싫어도 한 번도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인으로 살아온 게다.
오늘도 예의 "일하기 싫으면 떠나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말문을 닫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갓 대학에 들어간 둘째와 열공 중인 첫째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한 번쯤 생각하고 말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몇 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좋은 사업주는 없다는 편견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