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건 겨울을 싫어하는 나만의 착각인가? 여름을 특히 좋아하는 성격 탓에 겨울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변함이 없다.
오래지 않아 창 너머 복숭아 밭에 짙은 분홍 빛깔의 복숭아꽃이 피어 날 것을 상상하니 벌써 설레어 온다.
문득 찬란하게 피어날 봄을 상상하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나 생각해 본다.
철 모르던 10대, 치열했던 20대, 정신없이 흘려보낸 30대를 지나고 앞만 보고 살았던 40대를 넘어 이제 오십의 끝자락에 섰다.
나의 봄날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아련하다.
그저 편한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았던 세월은 아니었는지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볼 때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라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정형화된 초, 중. 고등학교의 학력 과정이야 그렇다고 쳐도
어렵사리 입학한 대학 때부터 꼬인 듯하다. 그냥 학과 수업에 충실하고 적당히 캠퍼스의 낭만을 즐겼으면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영자신문사 기자라는 평범하지 않은 대학 생활은 정상적인 대학생의 일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매달 데드라인에 쫓겨 할당된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밤을 꼴딱 새우고 학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학우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감각해질 때쯤 학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데드라인의 압박과 어지러운 국내의 정치 현실과 이상의 혼돈에서 오는 자아의 혼란으로 주량은 늘어 알코올 중독의 전 단계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입학 때 구한 하숙집은 식사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 하숙집 아주머니는 자취를 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번 몸담은 학보사 기자의 길은 사명인 냥 피골이 상접하도록 떠날 수 없었다.
부모님은 객지로 간 아들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었고 잘 지낸다는 한 통의 안부 전화로 대신했다.
시간은 흘러 졸업은 다가오는데 열정적인 학보사 기자는 졸업 정원제의 위기에 허덕이고 졸업 후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생각한다.
이미 나는 너무 멀리 왔다고.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은 너무 멀리 있었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내 인생은 형편없이 꼬여 버리고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백수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각박하고 세상 어느 곳에도 잘 나가던 영자 신문사 편집장을 버선발로 맞이하는 곳은 없었다.
내가 잘못 살았나? 세상이 불공평한 건가? 세상을 원망하던 시절도 있었다.
누구는 피디가 되고 누구는 교수가 되었다.
어리석은 나의 삶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허튼 자책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남들처럼 살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했다.
가지 않은 그 길에 대한 원망으로 한동안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이 길로 오고야 말았고 가지 않은 길은 어차피 나의 길이 아닌 것을.
설령 내가 그 길로 갔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이제 지금의 나의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야 한다.
새 봄이 오듯 내게도 따사롭고 찬란한 또 한 번의 봄이 찾아올 거라 믿어 본다.
그리고 한때 버릇처럼 흥얼거리던 나의 최애 가수 신해철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불러 보자.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 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