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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소중한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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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Oct 26. 2021
이사
고향을 떠난다는 것
결혼 전까지 살던 부산의 본가는 산복도로 위 비탈진 언덕에 자리 잡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주택이다.
내가 국민학교 입학할 무렵 경북 의성이 고향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으로 자리 잡은 동네가 부산의 섬 영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부산에서 살아오신 셈이다.
지금의 부산 집은 전셋집을 전전하던 우리 가족이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 처음으로 매수한 자가 주택이었다.
부모님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른 집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집에 부모님은 뿌듯해하셨고 닦고 쓸고 가꾸며 애정을 쏟으셨다.
나와 동생들이 다 결혼하여 분가한 후에도 부모님은 지금까지 그 산비탈의 집을 힘들게
오르내리시며 살아오셨다. 감히 그 집을 떠나거나
이사하
겠다는 생각이나 말을
감히
아무도 꺼내지 못했다. 50년 가까이 살아오신 그 집은 부모님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
이었다.
아버지의 무릎에 이상이 감지된 것은 연세가 일흔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병원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연골 수술을 받으니 한동안은 예전처럼
다니시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무릎 관절은 상태가
더
나빠졌고 뒤뚱뒤뚱 걷는 것은 물론 맨땅에 앉는
것도
힘들고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진통제로 무릎의 통증을 참아내며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께 인공관절을 수술해 드리 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당신은 한사코 싫다 하셨다.
워낙 고집이 센 분이라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엄마, 부산 집 팔고 청도로 이사 오시는 건 어때요?"
"그라만 나는 너무 좋지. 텃밭도 가꾸고 나는 너무너무 좋다"
청도의 텃밭에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께 넌지시 귀촌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다. 어머니는 대찬성이었다.
아버지는 "나는 그냥 여기서 살다 죽으면 안 되겠나? "하시며 달가워하시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의 본가 이사 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부산 집을 부동산에 내놨다. 바다 뷰 전망 빼고는 크게 장점이 없는 주택이라 쉽게 나갈까 우려했는데 석 달이 되지 않아 에어 비앤비를 구상 중인 매수자가 등장했다.
이제 청도 집을 구해야 한다. 부동산 사이트에 나온 적당한 가격의 매물이 있길래 아내와 그 이튿날 벼락같이 달려갔다.
100평 정도의 촌집인데 뒷마당에 널따란 텃밭이 있는 촌집이 우리를 맞았다.
막상 계약을 하려고 하는 찰나, 부산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일주일의 생각할 시간을 달란다.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일주일을 기다리면 이 집이 그때까지 팔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의 우유부단에 종지부를 찍은 건 아내다.
"가계약금 바로 보내소. 안되면 우리가 투자용으로 사도 될만한 집이구만 "
자금 여력도 안될 듯한데 아내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였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가계약금을 송금해버렸다.
가슴 졸이는 일주일이 흐르고 부산 집 매수자에게서 가계약금이 들어왔다. 그때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술술 풀렸다.
부산 집 계약하고 청도 촌집 계약하고 내부 수리업체 섭외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11월 초 이사만 남겨두고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부산 집을 떠나는 아쉬움으로 기분이 좋지 않으시다.
반면 어머니는 일각이 여삼추로 이사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신다.
나의
판단
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지만
부모님이 청도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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