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담 Nov 01. 2021

등산의 발견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

등산 애호가들은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선문답 같은 문구.

 나는 매주 산에 오르지만 아직도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등산에 입문하게 된 건 오롯이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대학 때 산악반에서 6개월 남짓 활동했었다.

그녀는 무용담처럼 산악반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으며 암벽 등반의 경험까지 들춰내 나의 기를 죽이곤 했다.


주말 낚시를  끊은 후부터 쉬는 날이면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앞산을 쥐가  곡간 드나들듯이 들락 거렸다.

산  오르기에 어지간히 이력이 붙을 무렵 우리 부부는 팔공산, 비슬산, 가야산, 덕유산으로 우리의 등산 영역을 넓혀갔다. 마침내 10시간 넘게 걸어야 하는 비슬산 종주도 이루어 냈다.


내가 등산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잦은 음주와 게으름으로 날로 두터워지는 뱃살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등산이 뱃살 관리에 일조를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아내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장거리 산행을 간다.

직장 산악회 회원들과 설악산 대청봉이며, 지리산 천왕봉을 겨냥하고 무박종주 행을 떠났다.

나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한 번도 같이 가자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저질체력 탓을 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공수표만 남발했다.


등산은 여러 가지 묘미가 있다.

산에 오를 때는 턱까지 숨이 차서 헥헥 거리지만 정상에서 만나는  눈 아래 펼쳐진 광활한 세상의 모습에 가슴이 확 트인다.

산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산길을 홀로 걷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철  따라 선보이는 온갖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어디다 견주겠는가?

그리고 하산길에 만나는 개울물의 청아한 물소리와 그 맑음은 또 얼마나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던가?


내게 등산의 끝은 하산이  아니었다.

내게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하산 후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하산주를 마시는 거다. 막걸리의 텁텁한 맛의 유혹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제도 앞산에  올랐다.

매번 같은 루트로 산에 오르지만 계절 따라 산은 항상 새롭고 변화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다섯  곳의 전망대와 두 그루의 최애 나무를 지나서 내려오는 하산길, 뒤에서 누군가 소곤거리는 환청이 들렸다.

"그래, 조금만 노력하면 자네도 설악산, 지리산을 오를 수 있다네. 좀 더 내게나."








이전 08화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