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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31. 2021

낚시

취미와 가족 사이에서 나를 찾다

"낚시는 취미가 아니에요. 다른 생물을 죽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게 어떻게 취미가 될 수 있나요?"

낚시 장비를 창고 밖으로 꺼내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마누라가 작심한 듯 쏘아댔다.


사진에 관심을 잃어가던 불혹의 나이에 나는 낚시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낚시를 안지는 오래지만 매주 빠짐없이 낚시 갈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빌어먹을 낚시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마누라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시골에서 한  달 내내 사촌들과 놀다가 방학 끝날 때쯤 부산으로 돌아오곤 했다.

사촌 형들 따라 낚시도 두어  번 따라가서 낚시의 원리나 방법 정도는 터득하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동생과 바닷가에서 가끔 매운탕거리를 잡아서 부모님께 갖다 드리기도 했다.

결코 취미라고 말할 수 없는.


낚시 동호회 멤버가 되면서 아내는 독박 육아를 감당해야 했고  주말 과부가 되었다.

토요일 오후 낚시 장비를 챙겨 풍광 좋은 저수지에서 밤새 손맛을 보고 오는 것도 좋았고  낚시 중간에 새참으로 먹는 삼겹살과 소주의 유혹도 뿌리치기 힘들었다.

긴 밤을 꼴딱 새우고 일요일 점심때쯤 초췌한 몰골로 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진다.

잠에서 깨면 오후 대여섯 시. 다시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한다.

나의 주말은 그렇게 끝나고 만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딸아이가 놀이 공원에 가자는 부탁도, 아내가 마트에 장 보러  같이 가자는 요청도 무시하고 매주 밤낚시를 다녔다.

그렇다고 내가 고기를 잘 잡은 것은 아니다. 거의 꽝 이거나 간혹 잔챙이 몇 마리가 고작이었다.

한 번은 월척에 버금가는 큰 붕어를 잡은 적이 있었다.

자로 계측을 해보니 30센티였는데 턱걸이 월척이라고 우겼다.


나의 종교의 근간은 불교다.

학창 시절에 불교학생회 활동을 한 탓도 있지만 어머니나 아내도 독실한 불교 신자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있는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나는 낚시를 가기 위해  낚시는 스포츠니 레저니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그렇게 살생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잡은 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걸  방생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또 나 자신을 변호했다.


나의 밤낚시로 부부싸움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부부생활의 침체기가 깊어질 무렵

나는 위기의식으로  뭔가  달라져야  되겠다는 절실함을 느꼈다. 그 길로 모든 낚시 장비를 아는 동생에게 넘겼다.


그렇게 나의 10년간의 밤낚시는 막을 내렸다.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낚시를 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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