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hkim Nov 25. 2024

에밀리 인 파리스와 빅토르 위고




마레를 걸으며 안 가이드는 이곳이 유대인 쿼터, 게이 커뮤니티, 그리고 루브르가 지어지기 전 왕궁이 있었던 부촌, 이 세 가지로 유명하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넷이나 사진으로도 눈에 많이 익은 Place des Vosges 라 불리는 넓은 공원에 둘러싸인 17세기에 지어진 타운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여행자들이 유명한 곳에 처음 가면 하는 말. 여기다 한마디 더 붙이면 “사진이랑 똑같네”이다.)


그러나 이곳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었고 사백 년 전에 지어진 타운하우스들이 어쩜 모던한 분위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제껏 파리에 여러 번 왔어도 이곳을 못 와봤다는 것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파리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고급 주택가의 분위기가 정사각형의 조경이 잘된 멋진 공원과 그를 둘러싼 잘 지어진 단정한 건물들에서 물씬 느껴졌다.


“어떻게 내가 여기를 이제야 왔지?”


또한 공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아이들 놀이터는 작았지만 잘 이용되는 듯했고 놀이기구들의 모습이 미국과 달랐고 디자인이 특이해 보였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관광객 위주의 공원이 아니라 로컬들이 사는 곳의 동네 놀이터 같았다. 푸근했다.



공원에는 벤치도 많아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도 나누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쳐다보고, 아이들 노는 것도 보면서 느긋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안 가이드는 나를 벤치에 앉히고 자신의 아이패드를 열어 헤밍웨이의 책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타이틀이 보였다. 그는 싱긋이 웃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말이 맞아요” 한다. “네, 그러네요.” 나도 동감.



꽤 오랫동안 시간을 잊고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 머릿속에 “이게 에밀리 인 파리스에 자주 나오는 주인공인 에밀리가 공원 벤치에 앉아 친구인 민디와 수다 떠는 장면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안 가이드에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밴치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이 에밀리 인 파리스에서 본 장면들 중에서 눈에 익었던 공원에서 친구랑 얘기하는 씬들과 비슷하네요. 저도 이런 거 정말 하고 싶었는데… 파리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안 가이드님, 여기 앉아계세요. 이런 거 사진으로 남겨야 해요.“


마음 한편으론 내가 오래전 직장에서 일하던 때의 사진이 별로 없는 것이 서운했기 때문이었는지 괜히 안 가이드에게는 일하는 일상의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찍어주고 싶었다, 다들 본인이 한창때라는 것은 그 한창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거라… 젊은 시절의 열심히 일하던 때는 지나고 나면 아련해지는 거라… 그리고 시간은 지나가면 절대로 재탕이 안 되는 거라…



그러면서 나 역시 이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아 지나가는 행인 중 근사한 카메라를 든 양반에게 둘이서 같이 앉아있는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난 생각지도 못했던 소원을 하나 이루었다. 안 가이드 덕분에. 마치 파리의 누구가 된 듯이. 혼자였으면 이룰 수 없었던…



나는 시각 디자이너로 사십 년의 짠 밥이 있어서인지 아님 타고난 성품이 그래서인지 새로운 것, 좋은 것, 등등… 눈이 즐거운 장면들을 엄청 좋아한다. 또한 서양에 오래 살아 어느 곳에 멋진 건물이 있으면 꼭 안에 들어가고 싶은 바람이 생긴다. 건물 겉에서 속을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서양의 건물은 겉과 속이 너무 달라서 건물 안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을 때가 너무 많았다. 또한 궁금하면 물어보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는 성격인지라, “안 가이드님, 이곳을 둘러싼 저 타운하우스들이 너무 멋져 보이는데 혹시 건물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있어요. 바로 여기 타운하우스 한 곳이 빅토르 위고의 집인데 박물관으로 되어있어요. 한번 가보죠.“



장발장 또는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워낙 유명해서 설명은 안 해도 되겠고, 그의 집은 공원의 한 코너에 위치하는 타운하우스 삼층에 (유럽식으로 이층) 있었는데 궁궐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상외로 내부가 웅장하였고 대문호의 집답게 그만의 취향이 확실히 보이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입구의 작은 웨이팅 룸을 지나면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리빙룸이 나오고 (지금도 이곳에선 종종 음악회가 열리는 듯 그랜드 피아노 위에 소르본느 대학에서 보낸 안내문이 있었다.) 곧이어 일본식과 중국식의 예술품으로 치장한 오리엔탈 룸, 그 옆은 당시의 귀한 앤틱 가구와 그림으로 꾸며진 유러피안 룸 (이건 내가 임의로 붙인 명칭들이다,) 그의 서재로 쓰였을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창문이 있는 방, 그리고 그의 작은 침실등이 있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몇 년 전 들어가 보았던 모네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리빙룸 옆의 커다란 오리엔탈 룸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일본과 중국의 미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은 온전히 일본과 중국풍의 그림과 조각, 그리고 차이나들이 (접시와 화병 등등..) 그의 취향에 따라 약간은 유럽풍의 인테리어로 멋지게 재 해석된 또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 같았다.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방들의 인테리어


서재에서 내려다본 정원의 풍경



그의 침실에 있던 대문호의 침대는 초상화나 조각상에서 보이는 건장하고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그의 모습에 비해 많이 작았다. 그러나 그의 집을 둘러보며 살아생전에 시인으로 불렸던 빅토르 위고가 높은 명성만이 아니라 상당한 부도 누렸다는 것이 확실히 보여 괜히 좋았다.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그들 역시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하기 나름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거실의 창 너머로 좀 전에 안 가이드와 내가 앉아 있었던 공원이 내려다 보였다. 마치 파리의 에밀리가 된듯했던 그곳.


만일 빅토르 위고가 이 창가에 앉아 지금의 Place des Vosges를 내다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관객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던 마지막 엔딩의 웅장한 합창에서 노래하였던 “내일의 유토피아”를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을까? 적어도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과 공원에 앉아 한가하게 늦은 오후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내다본다면 그가 자신의 꿈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정말 그럴까?




.

이전 03화 마레의 유대인 쿼터와 팔라펠 식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