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난 아들과 같이 뉴욕에 갔었다. 아이는 본인의 비올라를 고치고 비올라 활을 좋은 걸로 장만하겠다 했고 난 뉴욕패션위크 동안 백스테이지를 촬영하는 마크와의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호텔서 묵으며 아침과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위의 대화는 그날 악기상에 갔다 온 아이가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한 말이다.
난 팝에 대해선 거의 무지하지만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까탈스럽게 자기에게 맞는 악기를 구하려 애를 쓰는지는 아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요즘은 오디션에 가기 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렌트해서 가는 친구도 있다 했다. 부모에게 될 수 있으면 경제적인 부담을 안 주려 조심하는 아이가 과르넬리를 한번 연주해 보더니 갑자기 흑백세계에서 천연색세상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소리가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 줄 수 있는 가격대도 아니고 그런 악기는 돈 있다고 아무한테나 팔지도 않는다 들었다. 돈 많은 악기상이 고객 관리차원이나 투자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 지금의 라이카 카메라를 장만할 때까지 많은 고심을 했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아들과는 입장이 좀 달랐다고나 할까? 나이 탓을 해서 좀 그렇지만 이 나이에, 늦게 시작하는 새로운 공부인데, 남들보다 몇 단계 건너뛰어 (점프해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들과 같이 카메라의 성능만 보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겉으로도 멋지게 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나이 탓을 또 해서 뭣하지만 추레해 보이기는 싫었다.
라이카는 모든 점에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십 년을 잘 쓰던 2005년에 출시되었던 라이카 D-Lux3. 솔직히 라이카인가 보다 하고만 썼지 모델이 뭔지는 이 글을 쓰면서 첨 알았다. 작고, 가볍고, 예쁘고, 성능도 좋았던 가성비 만점의 기계였다.)
사실, 라이카라는 브랜드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제품이었다. 원래는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사 줬다가 몇 년 지나 도로 물려받은 2006년에 출시된 라이카 D Lux-3을 십 년 넘게 써왔었는데 이상하게 유행을 타지도 않았고 퀄리티도 십 년이 지나도록 모자람이 없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만족했었다. 우선 색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진기로 가끔씩 x북에 올리면 디자인 학과 교수인 동창 하나가 사진이 좋다고 매번 칭찬을 해 주었다.
“좋기는 뭘…”
“우리 과 선수들 다들 이 정도는 찍지 않나?”
나는 진심에서 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는,
“아니야, 소질이 확실히 있어. 비교해서 뭣하지만 우리 과에서 젤 잘 찍는다는 영상학과 XX교수랑 분위기가 달라. 나을 때도 많아.“
허, XX보다 내 사진이 좋다니… 아니 다르다니… 이런 칭찬이. 이후로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이 친구는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은인이 되었다.
마침, 당시 18년쯤 운영하던 나의 디자인스토어의 온라인 웹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하는 기간이었는데 점점 사진의 중요성도 커지고, 그의 말도 한번 믿어보고 싶어, 제대로 된 카메라를 장만하고자 리서치를 시작하다 만난 제품이 라이카 CL이다. 워낙 D-Lux3의 성능과 색감이 마음에 들었는데 같은 회사 제품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CL은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그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 중에 낮은 가격대였고 약간은 대중적인 제품이었으나 여전히 비쌌다. $4600불 정도? 렌즈는 바디와 세트로 나온 제품을 산 덕분에 약간의 디스카운트가 있었지만 가방과, 여유분 배터리, UV필터, 카메라 스트렙등의 액세서리 등에 엘에이까지 가서 받은 In-Person Tutorual Class까지 포함하니 오천불이 확 넘어갔다. 내 올케가 교회 갈 때 들고 가던 샤넬백과 얼추 비슷한 가격이라 “my version of Chanel”이라 불렀는데 막상 그녀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영문을 몰라했다. ㅎㅎ
당시는 유타의 솔트레이크시 근처에 살 때였는데 그곳에는 라이카 스토어도 없어서 그 비싼 제품을 눈으로 확인을 해보려고, 세일즈텍스도 절약하고 싶어서 ($500 정도), 내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라고 핑계까지 대면서, 마침 가족들이 살고 라이카 직영점이 있던 엘에이로 날아가 그곳에서 A를 만나고 설명을 들었다. (이 회사는 각각의 세일즈퍼슨들이 고객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그때 첨 알았다. A는 그 후로 라이카를 떠났지만 나와 SNS로 종종 연락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세일즈 텍스를 절약하려고 온라인으로 카메라를 샀다. 세금이 십 프로라 비행기 값은 확실히 떨어진 셈이었다.
(왼쪽: 학교후배인 J Kim과 2019년에 이태리에 갔을 때 처음산 라이카 CL을 들고 찍은 것. 사진기를 잘 다룰 줄 몰라 초점이 안 맞아서 놓친 사진들이 꽤 된다는 것이 아직도 그 친구한테 미안하다. 오른쪽: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 사화산 분화구위에서 아들이 찍어주었다. 라이카 CL)
역시나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 첨으로 사진을 좀 찍겠다고 빨빨거리고 다니는 나에게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굳이, 왜, 그 비싼 카메라를 쓰냐고 묻곤 한다.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만났던 옛날 디자인학과 동창이었으며 사진학과 교수로 은퇴한 남학생 역시 같은 소리를 했다. 그는 본인이 직업 사진작가라 나를 거의 놀리는 수준으로 내리깔아봤다.
“난, 그냥 아무 카메라나 써. 그래도 전혀 상관없거든. 뭐, 굳이 그 비싼걸…”
내가 사진도 못 찍는 주제에 (자신에 비해서?) 무슨 그리 비싼 장비를 가지고 다니냐고 놀리듯 얘기했다. 내가 사는 비싼 점심을 먹으면서. 허허허… (사실, 상업사진가들에게 라이카의 시장 점유율이 2% 미만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의 논리를 풀어나갔다.
첫째, 댁은 비싼 사진 장비가 필요 없지. 사진을 하나 대충 찍은 후엔 디지털로 픽슬레이션 해서 여러 겹 오버랩 해서 만드는 디지털미디어 이미지라 색은 적당히만 나오면 되니까. 에디팅 하는데서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거라 비싼 카메라가 아깝게 여겨지는 게 당연하고. 난, 그런 사진을 찍으려는 것이 아니라서 아무거나는 맞지 않음.
둘째, 내 경우는 늦은 나이에 첨 시작하는 거라 비싼 사진기로 폼을 좀 잡아야 상대방이 깔보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찍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라이카를 들고 다니면 쳐다보는 눈이 달랐음. 일종의 사기를 친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난,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한 것이고. 사기 칠 때는 확실하게 치려고 함.
셋째, 진짜 이유는 색감이 내 맘에 들어서이지. 아무리 그래도 사십 년을 디자인으로 먹고살았는데 나한텐 어떤 칼라인가는 아주 중요해. 둘러보아도 이런 종류의 색감을 가진 카메라는 안 보여서 맘먹고 산거고. 그래도 내가 찍는 사진인데 나한테 맘에 드는 색이 나와야 계속 찍지 않을까?
넷째, 가격 얘기를 하는데 내가 비싼 명품백은 없어도 같은 가격에 이런 장비 정도는 살 여유는 있네. 그러려고 이제껏 열심히 일했으니까.
다섯째, 그리고 이젠 막판이라 빨리 가야 해서 장비를 이것저것 고르면서 천천히 업그레이드할 겨를이 없어. 첨부터 좋은 거 사서 뛰어가려고. 내겐 댁처럼 사십 년이란 시간이 없거든.
사실, 위의 모든 이유들은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심이었다.
모두들 포르셰자동차의 클래식 모델이라면 911이라 하듯 라이카의 클래식은 M모델이다. 첨엔 대중적인 라이카 모델을 사용하다 결국은 M 모델로 진입한다고들 하는데 나 역시 D-Lux 3부터 시작하여 CL을 사고 몇 해 동안 쌈짓돈을 모아 삼 년 만에 라이카 M10R을 샀다. 렌즈까지 합치면 그전 카메라보다 약 세배가 비쌌지만 M이 매뉴얼 카메라인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첨 배운 아사히펜탁스 카메라가 수동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자동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오토포커스(AF) 기능이 왠지 시험 볼 때 커닝하는 (cheating 하는) 기분이었다면 설명이 될까? 카메라만큼은 내 맘대로 기계 조작을 하고 싶었다. 또한 조리개의 F-stop 이 내가 가졌던 CL의 F3.5로는 성에 안 차기 시작했던 이유가 클 것이다. 보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그런 렌즈는 M 렌즈들에 있었다.
그런 연유로 렌즈 역시 라이카의 클래식 모델 중 하나인 50mm Summilux F1.4로 장만했다. 전문가들 말이 첨으로 줌이 아닌 고정된 렌즈를 (fixed lens) 장만하면 이년은 마르고 닳도록 써야지 렌즈의 거리에 대해 감이 잡힌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딱 이년을 50mm 렌즈로 초상 사진을 찍고 나니 다음에 35mm를 쓰면 화각은 얼마나 넓어지고 그림은 얼마나 멀어지는지 또는 Q2의 28mm의 와이드 렌즈가 어떤 것인지 남편의 75mm 렌즈를 썼을 때는 그림이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슬슬 감이 오게 되었다.
그 이년의 시간 이후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정착한 기어들이 아래의 사진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라이카 M11P + 35mm ApoSummicron F2.0 그리고 단독으로 있는 렌즈는 35mm Summilux F1.4 made in Canada, 1970에 만들어진 vintage lens다. 라이카의 유명한 렌즈디자이너였던 Dr. Mandler가 캐나다에 라이카 공장이 있을 때 그곳에서 만든 렌즈들 중 하나이다. Pre-ASPH로 쉽게 말해서 렌즈의 한쪽 가장자리에서 반대편 가장자리까지 거리계산이 정확하지 않아 요즘 나오는 오차 없이 잘 만든 깔끔한 렌즈들 (ASPH 렌즈)보다 역으로 인간의 눈에 더 가깝게 닮은 렌즈 중 하나라고 들었다. (구형경차가 더 높다고 말한다.)
카메라에 장착된 35mm APO Summicron F2.0는 뉴욕에 갔을 때 친구 J가 내 눈앞에서 사는 것을 보고 도저히 나도 지나칠 수가 없어 하룻밤을 꿈속에서 렌즈 생각만 하다 담날 스토어가 문을 열자마자 가서 구입했다. 마크가 라이카에서 만든 렌즈 중 젤 잘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고 당시만 해도 그 렌즈는 구하기가 힘들었으며 눈독을 들인 사람들도 많아서 누가 가져가기 전에 사려고 아침 댓바람에 뛰어갔다. 뉴욕스토어의 제네럴 매니저인 로버트에게 그 렌즈를 달라고 하자 (세 개가 있었는데 그사이 하나 남았다) 그는 웃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어제 마크가 자기를 불러서 내일 M이 올 테니 그때까지 아무도 주지 말고 모셔두라 했단다. 하하하… 선생이 내 눈빛을 봤나 보다. 엄청 탐내고 있었던….
라이카의 경우 1930년대에 출하된 오래된 렌즈들도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현재 나오는 모던 디지털카메라에 장착해서 쓸 수 있다. 당시로서 획기적이었다 한다. 그런 렌즈들은 요즘 나오는 렌즈들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 특색들이 있다 한다. 아래 오른쪽의 사진은 나의 빈티지렌즈인 1970년대에 만들어진 캐나다산 라이카 렌즈로 찍은 것인데 자세히 보면 모델의 머리 위로 물방울 같은 패턴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이 렌즈를 잘 쓰지 않아서 아직은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감이 모자라지만 서서히 알아갈 거라 생각한다. 친구인 J가 이 렌즈를 같은 걸로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멋지게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아래 왼쪽의 사진은 엘에이 스토어에서 일하는 친구 S가 그녀의 빈티지 렌즈로 나를 찍은 것인데 사진 오른쪽에 약간의 물방울 패턴이 보인다. 그녀의 렌즈는 정말 특이했는데 사진쟁이 여럿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서로들 이 렌즈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다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점이 깔끔하지 않은 대신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부드럽게 보였고 무엇보다 색감이나 특수효과가 기가 막혔다.
2.
라이카 M 모노크롬 + 50mm Noctilux F1.2 + yellow filter
장만한 지 일 년 정도 되는 이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과 비슷한 사진을 찍게 되었다. 노란색 필터를 끼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안 되는데 나처럼 흑백으로 인물사진을 많이 찍을 때 이 노란 필터를 사용하면 사람얼굴에 콘트라스트를 높일 수 있다 해서 샀는데 진짜로 그 이후부터 내 사진들이 또 달라졌다.
필름카메라에서 흑백필름과 컬러필름으로 나뉘듯 디지털카메라도 흑백용 바디가 따로 있다. 라이카와 후지필름 카메라에만 있는 모델이다. 물론 컬러로 찍어 흑백으로 고쳐도 되지만 흑백카메라로 찍은 흑백사진은 나름 다르다. 한 끗 차이라고 할까? 내 눈엔 그 한 끗이 셀 수없이 많은 차이인 듯해서 이 모노크롬 카메라를 좋아한다. 이것과 자주 매치해서 쓰는 녹틸러스 렌즈는 최대 개방치가 F1.2라서 밤중에도 플래시 없이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현재의 카메라 바디는 작년에 둘 다 M11으로 바꾼 것으로 이유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M10R은 놋(Brass)으로 만든 것이라 그 자체로 너무 무거워 내가 원하던 무거운 녹틸럭스 렌즈까지 끼운다면 나의 약한 손목에 너무 무리가 와서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M11이 2023년 말에 나오고 새 제품이 나의 M10보다 30%가 가벼워 그 바디로 바꾼 후 바로 50mm F1.2 녹틸럭스 렌즈를 장만했다. 이젠 손목 부상 걱정 없이 들고 다니며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진짜 쓰고 싶은 녹틸럭스 75mm F1.25는 (남편이 사용하는) 꿈도 못 꾼다. 내가 이십 년 젊어지던지 그사이 손목에 강철심을 박던지 아님 한 일 년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지 해야 하는데 꿈을 접었다. 하지만 현재의 녹틸럭스만으로도 내 사진이 많이 바뀌었다. 장비빨이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꿈같이 보이는 이 풍경과 인물 사진은 당시 막 구입했던 녹틸럭스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노란색 필터를 쓰지 않아서 화면의 콘트라스가 떨어지는 느낌이 있어 아쉽다. 다음에 혹 에디팅을 다시 하게 되면 방법을 생각해 보고 싶다.
3.
카메라 가방: 독일산 Oberwerth 사 제품으로 이 가방을 사기까지 네 개의 가방을 지나왔다. 참고로 사진사들 사이에선 “또 가방 샀어?” 하면서 놀리는 게 일종의 직업병 농담일 정도로 사진사들은 가방에 거의 집착하다시피 한다.
내 경우는 처음엔 남편이 쓰던 천가방을 물려받았는데 영… 폼이 안 나서, 두 번째는 얼마나 큰 가방인지 모르고 넉넉한 사이즈를 온라인으로 샀더니 어마무지하게 무거워서, 세 번째는 예쁜 백팩을 샀었는데 일 년쯤 쓰고 나니 올이 풀어지며 언제 핸들이 떨어질지 몰라 무서워서 바꿨다. 그리고 네 번째 장만한 제품이 라이카 백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오버워스사와 합작해서 백개만 만들었다는 코발트블루색 가죽에 빨간 스티치가 박힌 폼나는 제품이었는데 내 맘엔 딱 들었어도 역시 내 어깨엔 무거워서 간직해 두었다가 아들에게 내 M10R 사진기를 물려주면서 이 가방도 같이 주었다. 역시 물건에도 임자가 있는 법인지 젊고 건장한 청년인 아이는 전혀 무거워하지 않고 좋아라 하며 잘 들고 다닌다.
마지막으로 장만한 오버워스사의 이 가방 두 개는 가죽 플랩에 달린 금속버튼에 잠금장치가 있어 잘못해서 가방을 거꾸로 들어 올릴 경우에도 카메라가 떨어지지 않아서 안심이 된다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크기는 렌즈를 붙인 카메라 한대를 넣고 여유분 배터리와 몇 가지 액세서리를 넣으면 딱 맞는 사이즈로 까만색 가죽은 흑백용 카메라백으로 고동색 가방은 컬러 카메라용으로 구분해서 쓴다. 만일 바디를 하나 더 산다면 블루컬러로 사서 색색가지 가방별로 속에 들어있는 사진기를 구분할 것이다. 이건 디자이너의 오랜 짠 밥에서 나오는 요령이다.
4.
라이카가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나 역시 두 개의 카메라가 기본 셋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도 기계라 혹시 여행 다니다 고장 났을 때 백업기어도 필요하고 기기의 종류에 따라 사진도 다르게 나오기 때문인데 욕심 먹고 하자면 여러 개를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나도 처음 포르토 여행 때 편하게 스냅사진 찍겠다고 남편의 사진기였던 Q2를 빌려 세 개까지 들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과유불급이라고, 석 대의 각기 다른 성정의 카메라들 사이에서 사진쟁이가 치여서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 경험 이후로 바디는 두 개만 가지고 다닌다. 혹시라도 나중에 필름카메라를 한대 더 장만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여행 다닐 때는 두대가 가장 적당하다는 것을 경험에 의하여 깨우쳤다.
카메라는 특히 라이카 카메라는 나를 포함한 보통의 여자들에게는 꽤 무거워서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할 때면 한대로 족한다. 여자사진사들 사이에서 탐나는 바디나 렌즈가 눈에 띄면 “가격이 얼마야?” 보다 “얼마나 무거워?” 하는 소리가 우습게도 젤 처음 나온다.
참고로 카메라 위에 라이카라고 쓰인 것이 칼라카메라이고 아무것도 안 쓰인 것이 흑백이다. 칼라카메라 핫슈(hot shoe: 플래시를 꽂는 곳이다)에 꽂힌 물건은 비지오플렉스(VisioFlex)인데 디지털카메라 렌즈에 들어오는 이미지의 레이아웃을 정확하게 보게 하고 이를 줌인하여 핀이 맞았는지 확실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안경같이 도수가 3.0까지 가능해서 나같이 노안이 온 사람들이 안경 없이도 자기 시력에 맞추어 사용하면 초점 맞추기가 여간 편리한 게 아니다.
아이는 위의 말이 맞는 말인 게 자기들 같이 보통의 프로페셔널들은 악기가 너무 후지면 음색도 후져진다고 하였다.
나 역시 백 프로 동감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핸드폰이던 어느 카메라든지 사진을 잘 찍어 보겠다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내 여자친구 G는 오래전부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핸드폰으로만 찍는데 잘 찍으려 애를 쓰는 이유에선지 그녀의 사진이 볼 때마다 좋아진다. 또한 SNS 사진 앱 중에 내가 팔로우하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진사가 있는데 그의 사진들은 나의 입을 쩍 벌어지게 할 정도로 멋지다. 그의 메인 페이지에 보면 자기가 사는 곳에선 핸드폰 밖에 없어 모든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었다고 쓰여있다. 그의 사진들을 볼 때면 내 라이카에게 엄청 미안하고 가끔씩은 내 자신이 창피해지곤 한다.
얼마 전 예전에 쓰던 후지필름에서 만든 꽤 괜찮은 디지털카메라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의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는 날 볼 때마다 그 사진기로 잘 찍고 있다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젊은 그는 나처럼 라이카로 폼 잡아야 할 이유도 없고 편하게 자기가 찍고 싶은 사진을 맘껏 찍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젊은이가 나는 더 이상 안 쓰는 사진기를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오래된 사진기도 즐거워하는 것 같고 우선은 내가 더 기쁘다.
예전 나의 아이폰 6(왼쪽)과 8(가운데, 오른쪽)로 찍은 사진들.
인생은 선물이라고 누가 그랬다.
나에게 사진은 선물이다.
아주 즐거운 선물이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