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테이션
패션 워크숍의 주체인 마크의 프로듀서 세이지와는 남편의 워크숍 취소를 상의하기 위하여 전화로 처음 만났다.
남편과 나는 따로따로 라이카 아카데미를 통해서 육 개월 전에 워크숍 신청을 하였고 참가비도 각자가 지불했고 비행기표도 따로 샀고 도착하는 날과 떠나기 전날에 묵을 호텔만 내가 정하고 나머지는 그쪽에서 다 해결할 터라 신경도 안 썼다. 당시는 우리가 유타에서 포틀랜드로 힘겹게 이사를 한 직후였다.
(참고로 미국에서 타주로 이사를 하는 것은 아주 큰일이다. 패스포트만 빼고 거의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것과 비슷하다. 거주지 주소만이 아니라 세금이나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사업자 등록, 운전면허 등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자동차로 이틀을 운전해야 도달하는 먼 길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새로 이사 가는 곳의 집수리가 만만치 않았는데 그 모든 일을 남편이 책임지고 진행하다 몸의 건강 자원이 바닥이 났었나 보다.)
이사 후 바로 워크숍을 떠나려니 남편은 컨디션이 안 받쳐준다 했고, 나는 뒷수습을 해야 해서 떠나기 이주일 전, 라이카 아카데미에 이멜을 보내 서면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래도 직접 얘기하는 게 낫다 싶어 프로듀서인 세이지와 전화로 확인했던 셈이다. 다행히 처음부터 따로따로 등록을 하고 여행준비를 하거라 한 사람만 캔슬하기가 용이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남편은 참가비의 반을 돌려받게 되었고 나는 혼자 가는 걸로 확정을 지웠다.
워크숍을 일주일 겪어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갔기 때문에 내가 워크숍에 몰두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의 사진 인생이 시작될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 후론 남편과 함께 워크숍에 참가하는 것은 꿈도 안 꾼다. 같은 시간, 같은 도시, 다른 호텔에 머무르는 것도 안 한다. 사진을 찍을 동안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 아무의 간섭도 없이 나에게만 충실하면서 평생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해 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밀란에 도착한 날 혼자서 돌체 앤 가바나의 새로 단장했다는 카페에 구경 삼아 가 보았다. 느낌은? 카페 전체에 그들의 로고인 D&G로 도배를 해 놓았다. 내가 주문했던 샌드위치 겉면에 D&G로 불도장을 찍어놔서 기절하는 줄…)
밀란 두오모 근처에 위치한 라이카 스토어 이층 강의실에서 만나게 된 생전 첨 보는 총 다섯 명 참가자들의 면면이다. (원래는 남편까지 6명 정원이었다.) 우리는 본인들이 찍은 사진을 몇 장씩 보여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G: 일찌감치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돈을 벌어야 해서 법을 공부하신 초로의 성공한 현직 변호사. 무척 내성적이었으나 사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찍던 아저씨.
J: 역시 평생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어릴 때는 너무 가난해서 필름 살 돈도 없어 포기했고 커서는 부모님과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지난 사십 년간 취미로만 쉬엄쉬엄 찍으셨다고. 인생의 굴곡도 만만하지 않으셨으나 지금은 꽤나 성공하신 보험설계사이며 거의 은퇴를 하셨다.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근처 메디슨가 고층 건물에 개인 사무실 겸 사진 스튜디오를 가지고 계신다. 예전엔 록펠러 센터의 사무실에 직원만 90명이었다고 들었다. 영문학 전공으로 대학원 졸업 후 베트남 전 참전을 피하려고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시인이기도 하며 나의 멘토가 되어주신 고마운 분이다. 그때 만나 지금까지 절친으로 지낸다.
H: 삼십 대 중반의 실리콘벨리의 스타트업 창업자이자 COO인 그는 아시아계로 (어느 나라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고등학교 첫사랑이었던 부인과 (백인 여성) 함께 왔다. 이 워크숍엔 동행이 허락된다. 그들은 사진만 안 찍었지 미팅에도 참석하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다니고,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한다. 참가비는 우리의 반. 보통은 배우자들로서 세이지는 이들과 따로 스파에 가는 것으로 특별 스케줄을 소화한다.
D: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고 뉴욕의 유명한 회계법인에서 일 년간 일하다 때려치우고 (얘기를 들어보니 잘 나가던 친구들은 정신 나갔다 했고 부모님들의 실망은 어마어마했기에 이 표현이 적절하다 생각한다) 친구의 패션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 인생을 설계한다는 28살의 이탈리언 3세. 뉴욕에 가면 꼭 만나는 나의 젊은 남사친. ㅎㅎ 이년 후인 지금은 뜯어말리던 친구들이 되려 부러워한다는 패션 센스 뛰어난 뉴요커이다.
M: 어쩌다 참석하게 된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운 동양인 여자. (자기들끼리 레이디 M이라 했다고.) 지난 2-3 년간 이것저것 찍어오던 사진이 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었다. 마치 나의 일주일 후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세이지가 웃으면서 “기다려 보시라.” 하였는데 진짜로 그 사이 내 인생이 바뀌었다.
(왼쪽은 라이카 밀란 스토어, 오른쪽은 우리의 마이티프로듀서 세이지. 28세의 어여쁜 여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뒷모습이 당당하다.)
20대 후반으로 마크의 프로듀서를 한 지 9년쯤 되었단다. 처음엔 인턴으로 출발했다고. 성악전공이었다고 들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워크숍의 구성과 매일의 스케줄, 목적, 준비물, 제출해야 되는 사진 등등을 설명하면서 몇 가지 사항을 주지시켰다.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들은…
“절대로 모델의 몸에 손대지 말 것”
“성희롱 금지“
“똑같은 인간으로 정중하게 대할 것”
** 만일 위의 사항을 어길 시는 그 자리에서 퇴출.
이 말을 할 때 그녀의 모습은 “내가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나니 잘 들으셔”였다. 혹시라도 생길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 명의 남성들은 모두 진지한 눈치였고 혼자 여자인 나만 울랄라…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으므로.
참고로 마크는 누드 사진으로도 유명한 사진가이기도 하다. 난? 일도 관심 없다. 여자가 미쳤다고 같은 여자 누드를 찍냐가 내 생각이고 지금도 변함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존중한다. 마크 역시 내가 누드를 안 찍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에겐 누드사진 워크숍에 오라는 말은 일절 안 한다.
어떤 이유인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선생 마크와 미국 라이카 아카데미에서 파견 나온 존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거다. 마크는 사진에 대하여 존은 본인이 밀란까지 짊어지고 온 엄청 무거운 백팩 속의 여러 가지 라이카 기어에 대하여. ”2-3개의 카메라 바디, 5-7개의 다양한 렌즈들. 필요하신 분들은 빌려가서 사용해 보셔요“ 하고 말이다.
마크와 세이지는 처음 만났지만 존은 코비드전인 2019년 라이카 CL을 처음 사고 사진기를 다룰 줄 몰라서 뉴욕서 하는 워크숍에 참가했을 때 만났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길거리 사진사 필 펜만 (Phil Penman: 9/11 사진들로 유명해졌다)의 사흘간의 뉴욕거리 워크숍이었는데 나는 필의 강의보다 존의 도움이 절실했을 때라 꼭 붙어 다녔다. 184cm쯤 되어 보이는 독일계의 거구인 그는 폭신한 곰 인형 같이 순하고 친절했고 나는 그가 이번 워크숍에 참석한다 해서 혼자 가는 길이었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그의 백팩의 기어를 눈으로 확인하며 나는 “이게 웬 떡이냐!” 했지만 하나도 안/못 빌렸다. 매뉴얼 카메라와 새 렌즈를 장만한 지 육 개월도 안 된 사진가에겐 가지고 온 기어에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 되었으니까.
참고로 우리 팀에선 어떤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28세의 싱글이었던 D가 나중에 말하길, 우리의 첫 모델이었던 스웨덴 출신의 19살 앵글라가 처음에 드레스업을 하고 나타났을 때 무척 긴장했었다고 나를 보고 수줍게 웃으며 고백했다. 그를 보며 옛날 미대 일 학년 누드 뎃상 첫 시간에 엄청 긴장하였던 우리 과 남학생들이 생각나서 “무슨 말인지 알아.” 하며 엄마의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생김새도 연배도 배경도 직업도 달랐고 성격은 물론 달랐고 모든 것이 다 달랐지만 어쩌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날 그 자리에 같이 앉아 일주일 간의 워크숍을 시작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D가 앵글라와 밀란의 유명한 쇼핑몰인 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에서 촬영하는 모습. 여기엔 안 보이지만 그의 주위엔 이 사진을 찍은 나를 포함해 군중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촬영하는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D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갑자기 뒤를 돌아보곤 깜짝 놀라서 서둘러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지금도 그때 그의 당황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패션의 도시 밀란답게 거리 곳곳에는 사진사와 모델의 촬영신들이 어렵지 않게 보였다. 아마 우리도 그중 하나였을 듯. 보통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