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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물 사진을 찍나요?

by Mhkim




사진은 기록이 주 용도다.

대부분의 인물사진도 기록용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집에는 커버의 사진과 같이 인물사진들이 집안을 장식한다. 부부의 결혼사진, 아이의 돌사진, 첫째 딸의 졸업사진, 즐거웠던 여행사진 등등… 하다못해 영화 블레이드 런너(blade runner)에서 사진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복제인간이 진짜사람 행세를 하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로 쓰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진에서 기록의 힘이 크다.


그러나 인물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기록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간다. 인터넷에 보니 인물사진의 영어 표기로 생각했던 portrait photograohy일 경우 예술 사진도 포함되어 있는데 나의 인물사진 또한 그와 비슷한 스펙트럼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나의 관심사가 초상사진에 국한된다고는 생각지 않기에 보편적인 표현으로 인물사진이라 정의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전반적으로 사람을 주제로 찍는 것을 좋아한다.


어찌 보면 사진을 그것도 인물 사진을 찍게 된 것이 일종의 나의 의지를 뛰어넘는 소위 팔자라고 하는 운명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난 이 년 반의 시간을 뒤돌아보며 글을 쓰는 요즈음, 조금씩 들곤 한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많이 배운다.



나의 인물사진 공부의 시작은…

위에 있는 삼십 년 전 엄마와 아들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네 살이 갓 넘은 아이는 하룻밤사이에 서른여섯 살 젊은 엄마의 손을 잡고 정든 집을 떠나 방한개짜리 조그만 아파트에 새로 둥지를 튼다. 엄마인 난 실리콘벨리 하이텍 회사인 오라클의 마케팅분야 시니어디자이너였고 이 사진은 내 동료 디자이너와 일하게 된 사진사 P가 찍어준 것이다.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 그는 영국 왕실사진작가의 조수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젊은 시절에는 보그지의 표지 사진가였으며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후에는 포브스 잡지 전속 프리랜서 사진사로도 활동하며 실리콘벨리의 유명인들을 찍었다. 한마디로 인물사진의 도사였다. 한 번은 그가 찍었던 애플사장 스티브잡스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잡스가 죽고 나서 타임지에 두 페이지짜리 스프레드로 실린 적도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모르고 지나친 나를 보고 동료를 통해 모델로 찍고 싶다는 연락을 넣었고, 나는 그의 피사체가 되어주는 조건으로 내 아들과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었다. 뭔가 아들과 나의 인생에서 이정표 같은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당시 찍은 사진 한 장이 삼십 년이 훌쩍 지나도록 내 책장 위에 놓여서 (위 오른쪽 사진)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사진은 지난 모든 순간순간에 나의 친구였고 응원자였으며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는 내 마음의 눈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나도 이런 인물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게 의미 있는 순간을 더도 덜도 없이 담아내는 인물사진에 매료되었고 나의 모델들에게도 그런 순간을 내가 찍은 사진으로 선물하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한번 더 힘을 내보라고…



마음의 힘

인물사진을 찍겠다 마음을 먹은 후, 계획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는 디자이너답게 내 맘대로 어떤 특정한 인물에 대한 사진을 찍겠다 주제를 정했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넣어 허락도 받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큰 포부를 가지고 한국 가는 비행기표도 샀다. 근데 코비드가 터졌다. 모든 것이 정지.


이래저래 집에서 생각만 하고 지내다가 격리 상황이 살살 풀리면서 움직이는 사람을 찍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라이카아카데미가 있는 엘에이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현대무용하는 댄서를 찍는 사진작가에게서 프라이빗 레슨도 받았고 내 대상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 음식 사진 찍는 법도 알아야 해서 푸드포토그라피 워크숍에도 참석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를 제치고 막상 인물사진을 제대로 배우게 된 것은 내 의지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서로의 연결 고리가 없어 연관이 있는 것인지 전혀 눈치도 못 채었으니까. 당시는 우연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필연이었던 것이다. 마치 신이 있어서 내 마음을 읽고 등을 떼밀어 준 것처럼.



패션모델사진이 인물사진?

많이 상통한다. 패션모델사진 촬영은 인물사진 촬영을 연습하기 딱 좋은 경우다.


나의 경우, 2022년 가을, 라이카아카데미에서 주최한 Mark de Paola의 패션포토그라피 클래스를 밀란에서 일주일간 참석했다. 원래는 남편이 간다고 해서 혼자 보내기 걱정되어 한국에 인물사진 찍으러 가야 하는 나의 비행기 스케줄을 미뤄가며 따라나선 것인데 그가 출발 두 주 전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하는 바람에 나 혼자 가게 된 것이다.


패션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별로 바라는 것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삼아 떠난 여행에서 나는 의도치 않게 인물사진의 매력에 빠졌고, 그로부터 이 년간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마크 선생을 만나 사진 찍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크는 패션 포토그라퍼로 유명하다.)


내 딴에는 정식으로 사진학과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나의 세 번째 대학원 코스로 생각하고 그에 상응하는 시간과 노력, 경제적인 투자를 하고 싶었다. 어릴 적에 시간과 돈이 없어 뭘 하던 원하는 만큼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늦게라도 생겨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능할 때, 더 늦기 전에,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준 시간은 2년…

그전까지는 라이카워크숍에도 참가했으나 사진은 웬만큼은 찍는 정도. (사진은 구도가 젤 중요한 거라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못해도 보통 이상은 찍는다고들 한다.) 내 회사 웹페이지에 제품사진을 올려야 해서, 또는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쓸 참고사진이 필요해서 찍었고 코비드 전에 첨으로 제대로 된 사진기를 사고부터 (너무 비싸서 “my version of Chanel”이라 별명을 붙였다. 난 샤넬백 같은 거 없다, ㅎ) 그 카메라로 찍어 웹에 올리니 갑자기 회사 매출이 올라가서??? 사진의 힘을 직접적으로 실감한 후에는 처음에 힘들게 장만했던 카메라도 성에 안 차 자동차 바꾸는 대신 벌컨백을 사는 마음으로 (역시 벌컨백 같은 거 없고 내 차는 열세 살이 되었다.) 매뉴얼 카메라로 업그레이드를 한 후, 첨으로 참가했던 일주일간의 in-person workshop이었다. 코비드가 막 끝나가는 때이다.


간단히 말해서, 7일간의 워크숍을 따라다니며 내 인생이 바뀌었다. JUMP라는 말이 딱 맞는다.



아주 오랜만에 설렌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회화과를 가서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울 듯해서 (당시만 해도 환쟁이란 말을 들을 때였다) 대신 절충안으로 산업디자인을 배우고 평생을 그걸로 먹고살고 한 것이 이젠 거의 오십 년인데 난, 내가, 디자인을,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같이 사는 것과 연애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법인 듯. 디자인할 때는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데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붙이면 100프로 사진에만 집중한다. 옆에 누가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마치 그 옛날 새로 만나게 된 남자친구를 보러 가는 것 같이 가슴이 뛴다.


내 선생 마크와는 지난 이년 동안 사 개국, 여섯 개 도시에서 총 12번을 만났다. 길게는 동료들과 함께한 일주일 또는 열흘간의 워크숍에서, 짧게는 엘에이나 뉴욕으로 날아가 만난 선생과 세 시간의 개인 레슨으로, (마크는 뉴욕이 베이스지만 앨에이에도 집이 있어 왔다 갔다 한다.) 날아다녔다. 그 와중에 다른 클래스들도 있었지만 그를 만나고 와서는 또 점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에는 허겁지겁하던 걸음이 계획한 대로 두 해가 되어가니 조금은 차분해졌고 내 옆도 살피게 된다. 이제는 마크를 두 달마다 안 만나도 될 것 같아 2024년 파리포토 중 열렸던 워크숍 이후 서서히 숨을 고르며 내가 하고 싶은 작업도 구상하고 포트폴리오도 정리하고 있다.


혹 인물사진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자그마한 레퍼런스라도 되기를. 사진에는 관심이 없다 해도 사진사들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미친 듯이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닐까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된다면 너무 기쁠 것이다. 그에 더해 만일 이 글들이 독자들의 숨어있는 꿈을 발견하는 조그만 단초라도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세상에서 태어나 살면서 꿈을 알고 쫓아가는 일만큼 멋진 일이 없다는 것을 사진을 배우면서 이 나이에 첨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다만 이것은 내 개인의 경험으로 보편적인 과정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사진을 공부하며 배운 생각은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니 오늘은 마음을 열고 유연하게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내 사진들은 처음에 생각하던 인물사진과는 전혀 다르고 앞으로는 어떨지 상상도 안되는데 혼자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계획만 세운다면 이 무슨 시간 낭비일까 싶어서다. 그냥 그때그때 맘 가는 대로 하기로.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금, 매일매일이 흥미진진하다.


사진 설명:

왼쪽: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만났던 나의 그림자. 해가 다른 쪽으로 움직이기까지 약 오 분 남짓.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중 하나인데 예전 같았으면 절대 생각도 못했을 사진들 중 하나이다.

오른쪽: 모로코에 여행 갔을 때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사장님과 그의 당나귀.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얻은 사진인데 그 얘기는 언젠가 따로 할 날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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