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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Prologue

by Mhkim




사람의 눈에서 우주를 보았습니다.

언니와 나는 띠동갑인데 돌아가신 형부는 언니보다 여섯 살이 많으셔서 형부와 나는 십팔 년의 나이 차이가 있다. 두 분이 칠십 년대 초 마국으로 이민을 가시기 전 군의관으로 근무하시던 형부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처제에게 망막 안의 세계를 보여주신 적이 있었다. 나서 첨으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해서 혹시라도 쇼크가 올 수 있다며 내 눈에 마이신 한 방울을 떨어뜨려 테스트를 하셨을 때였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신 후 나를 불러 옆에 앉히고는 망막경 (ophthalmoscope)으로 사람의 눈 속을 보여주셨다.


“어머나!”


그 속에 온갖 별들이 모여서 퍼져나간 듯 한 하늘의 우주가 내려앉아 있었다. 인간의 몸에서 맨 눈으로 살아 움직이는 동맥을 볼 수 있는 곳은 눈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나 2022년 밀란 패션워크숍을 끝내고 비행기 스케줄 관계로 혼자서 밀란에 하루를 더 머무른 적이 있다. 당시 시내를 구경삼아 돌아다니다 두오모 근처에 위치한 미술관에서 열렸던 미국 사진작가 리처드 아비동(Richard Avedon)의 회고전에 갔었다. 눈에 익은 사진들을 보며 처음으로 찍은 사람이 아비동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전 시대의 유명한 패션 사진가로 수많은 보그잡지의 커버사진을 장식했지만 그보다 헨리키신저나 미국의 여러 대통령등을 망라한 세계 유명인의 인물 초상화를 찍었던 사진가로 더 명성을 날렸던 것 같았다. 각각의 초상화들이 가로세로 거의 일 미터씩이 넘었는데 하나하나 그 인물들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맙소사!”


너무나 이상하게도 그 사진의 눈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 눈 속으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이 찍은 사진들 앞에서 난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사람눈 안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왼쪽부터: Duck & Duchess of Windsor, John F. Kennedy, Copyright (c) Richard Avedon Foundation)


하나 더…

그중에는 유명한 영화감독인 Michelangelo Antonioni의 독사진과 함께 그의 헌신적이던 젊은 부인과 같이 찍은 사진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처음엔 아비동이 나이가 들어 병약해져 힘없이 서있는 안도니오니 감독의 모습만을 찍었는데 (왼쪽 아래)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부인이 나타나 감독 옆에 서서 손을 붙잡으며 그를 받쳐주니 갑자기 감독의 허리가 펴지고 예전의 당당함이 나타나서 그 모습 또한 찍었다고 되어있었다. (오른쪽 아래)



“아하… 사람은 감정에 따라 진짜로 다르게 보이는구나! 카메라 렌즈는 그런 모습을 정확히 잡아내는구나!”

감동이었다.


…………………

닫힌 힘의 공간

프랑스의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인물 사진은 닫힌 힘의 장이다. 여기에는 카메라 렌즈 앞에 있는 나의 입장에서 (모델) 보면 네 개의 각기 다른 이미지-레퍼토리가 교차하고, 대립하고, 왜곡된다.

이곳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 남들이 나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나, 사진작가가 생각하는 나, 그가 자신의 예술을 전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나가 있다.“


참고로 영어 원문은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The portrait photograph is a closed field of forces. Four image-repertories intersect here, oppose and distort each other. In front of the lens, I am at the same time: the one I think I am, the one I want others to think I am, the one the photographer thinks I am, the one he makes use of to exhibit his art.”

-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1984, p. 13)


(지난 한국 방문 때 동료 사진작가인 M과 모델이며 영화배우인 J와 덕수궁 근처에서 같이 촬영을 했을 당시 둘의 모습; 사진사와 모델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 주는 듯하였다.)


이 글에서 모델의 입장에서만 인물사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 이유는 책의 흐름에서 볼 때 이곳이 대상(subject)을 찍는 시작점이기 때문인 듯하였다. 글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인물 외에 주위의 많은 요소들이 변해 감에 따라 인물사진의 의미도 달라지고 복잡해진다. 책 한 권에서 한 단락만 인용할 시 주의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는 사진사로서 그가 말했던 ”닫힌 힘의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공간이 나에게는 사진기가 잡아내는 그 찰나의 시간 (simply 'the material' or 'the accidental')에 일어나는 모든 에너지를 가두고 있는 방(space)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비동의 인물사진에서 처럼.



롤랑 바르트의 글은 이곳을 시작점으로 하여 시간적으로 확장된다. 마치 음악이 흐르듯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의 모델의 생각이 바뀌 듯 표정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래 보는 사진들과 같이. 그리고 아비동의 영화감독 안토니오니와 그의 부인의 인물사진들 같이.


시간의 흐름, 감정의 변화

아비동의 인물사진을 생각하며 나는 아래의 사진 촬영 전 나의 모델이자 콜라보레이터였던 J에게 그 자리에 고대로 서서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놔두라 했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변하는 표정의 모습을 찍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5-10초 간격으로 약 오분정도를 카메라에 담았다. 다 찍고 난 후 그녀와 같이 리뷰를 하며 이 각각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느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기는 그녀의 감정과 기억까지를 모두 담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촬영이었다.



인물 사진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소위 내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시각디자인 포함) 먹고살았다는 내가, 또는 뭐든지 그릴 수 있도록 훈련된 그림쟁이가, 도저히 잡아낼 수 없었던 찰나의 순간(시간)을, 사진기와 렌즈는 날것으로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이 카메라만이 가진 순수한 매력? 또는 마력이라 생각했다. 포토저널리즘의 기능이다.


(위: 나의 자화상. 가끔씩 거울 앞이나 길거리의 쇼윈도 앞의 내 모습을 찍곤 한다. 예전 인상파 화가들이 모델을 구할 돈이 없을 때 연습용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그렸다는데 가끔씩 이러는 나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세상 편한 게 내 모습을 찍는 것이라서. 시간, 장소, 돈의 구애가 없다. 게다가 기록까지 되고 내 맘대로 실험도 해 볼 수 있다.)


…………………

또 다른 이유는 파인 아트의 기능이다.

사실 이 파인 아트의 기능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게는 가장 힘든 작업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마도 사십 년 넘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고 그렇게 작업해 온 산업 디자이너의 틀을 깨야만 다다를 수 있는 스페이스이기 때문이리라. 지난 이 년 동안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가끔씩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또한 아무도 하지 않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에는 정도(right path)가 없어서 우선은 많이 봐야 하고, 많이 찍어야 하고, 많은 생각과 실험을 해야 하고 고정관념을 깨부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점프(JUMP)라 부른다. 이점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써나가고자 한다.


(뭔가 좀 다른 앵글로 J를 찍고 싶었다. 투명 유리 너머로 얼굴이 안 보이는 그녀를 보며 그의 얼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

내 공부의 과정을 기록한 것

앞으로 써 나갈 나의 인물 사진 스토리는 찰나의 시간을 잡고 싶어 사진기를 든 한 사람이 아트사진의 레벨까지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기록한 글일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아트사진 근처에도 못 갔지만 이제는 그것이 뭔지 어렴풋이 알 듯은 하다. 여기에는 인물사진을 찍게 된 이유, 우연히 패션사진부터 시작했던 공부의 과정, 사진기 선택이나 카메라를 다루는 방법을 깨우치는 과정이나, 여러 모델과 일하면서 배운, 느낀, 경험들을 써나가려 한다. 물론 선생들과의 이야기도 있고 나 자신의 사유도 많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 과정을 거쳐오면서 나는 단순히 사진 찍는 것을 배우는 과정을 너머 나 자신이 꿈꾸던 그러나 틀을 깨는 것이 무서워서 실천에 못 옮겼던 많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두려움을 떨쳐가며 실험할 수 있었다. 내가 마크 선생에게 제일 고마워하는 부분이다. 그는 나에게 편안하게 놀 수 있는, 마음 놓고 나를 실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돌아보면 자기랑 비슷한 또래의 (나보다 두 살 위) 늙수그레한 동양 여자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치고 있는데 핀잔 한번 주지 않고, 알아서 깨우치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은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백 프로 이해는 안 간다. 이제껏 나의 어떤 선생과 비교해도 드문 경우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이 배웠는데 앞으로 그 점에 관하여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기간은

코비드가 막 끝나가던 2022년 10월 밀란에서 시작하며 마지막 수업은 대략 2024년 11월 파리포토기간에 열린 마크의 워크숍에서 끝이 난다. 나의 메인 선생인 마크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번째 파리포토 워크숍에서 나는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이 년간의 도제과정을 마친 듯하였다. 물론 사진 공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그와의 워크숍도 일 년에 한두 개씩은 계속 참가할 것이지만 굳이 말로 하자면 (figuratively speaking) 그렇다는 뜻이다.


나름 힘에 부칠 정도로 밀어붙였던 지난 이 년 반의 사진 공부를 뒤돌아 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넘어 우선 흥미로왔으면 한다. 재미없으면 나도 안 보게 되는 거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좋은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쓰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비동의 전시회에서 보고, 읽고, 찍어 두었던 그의 문구 하나를 공유하고 싶다.

“나의 인물사진은 내가 찍은 사람들보다 내 자신에 대한 내용이 더 많습니다.” 이 문구에서 아비동이 헨리키신저를 찍을 때 키신저가 그에게 부탁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나를 좀 잘 봐주시오.“ 아마도 여기 보이는 키신저의 모습은 키신저 입장에서 잘 봐준 모습이라기보다 아비동이 본, 아비동이 생각했던 키신저의 모습일 확률이 훨씬 더 크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찍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운이 아주 좋으면 우주를 맨눈으로 보기도 한다. 그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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