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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의 세계로 점프 인 (Jump In)

by Mhkim




워크숍은 패스트 트랙 (Fast Track)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새로 사진을 배우게 되면서 첨부터 시간과의 싸움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나이의 젊은 친구들보다 배우고 익히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엔 나에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뭘 하나 제대로 하려면 소위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는데, 그러려면 쉬지 않고 하루에 네 시간씩 할애해서도 7-8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워크숍이 답이었다.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열흘정도의 워크숍이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라는 것은 육 년 전 필펜만(Phil Penman)의 뉴욕 스트리트포토워크숍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글로 쓰인 매뉴얼이나 유튜브 등보다는 선생과의 직접대화에서 제일 빨리 배운다는 것도 알았다. 워크숍은 우선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사진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엄청 많이 배운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터져라 하고 며칠을 사진만 찍고 사진 생각만 하니 사진에 대한 압력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해 급기야는 빵 하고 터지는듯한 점프의 순간이 오곤 했다. 물론 이것도 두 달쯤 지나면 약발이 떨어졌다.


그래서 두 달마다 선생을 찾아가서 “돈을 쳐들여가며 기를 쓰고 사진을 배워왔다.“ 나에겐 천천히 가도 되는 시간이란 것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의 나름의 생존법이었다. 후회? 일도 없다.


포르토 빌라에서의 워크숍도 그 연장선의 하나였다.

그곳에선 나의 생각을 어지럽힐만한 아무 요소도 없이 완전히 사진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의 점프를 했던 것 같다.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모든 중요한 순간은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법이다.


사진설명: 매일 저녁 이렇게 정원에 나와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뒤돌아보니 이때가 우리 워크숍의 하이라이트 같았다. 모두들 가까워지던 시간이기도 했다.


사진설명: 로케이션 할 곳을 찾으면 같은 장소를 흑백이 좋을지 칼라가 나을지 비교해보기도 했다.


세명의 모델, 세 번의 촬영

도착한 다음날 아침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번은 밀란보다는 좀 양반이라, 모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포르토에서 만났었다.) 슈팅 시간도 15분씩 주어졌다. 밀란에서의 5분에 비하면 내 머리가 숨 쉴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마음의 공간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운신의 폭이 늘어나 두세 곳을 옮겨 다니면서 찍을 수도 있었다.


과제는 여전히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어서 나는 슈팅이 시작되기 전부터 바삐 움직이며 로케이션과 콘티를 머릿속에, 내 카메라에 담아 두었다. 촬영을 위한 일종의 스토리보드를 완성해 놓은 것이다. 이들 이미지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모델에게 나의 콘셉트를 사진과 같이 보여주니 이해가 훨씬 빨랐다. 또한 같은 내용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에 한 팀이 될 수 있었고 실제 촬영 시 좋은 연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예를 들어 에카트리아와 찍은 아래 다섯 장의 사진들이 그러하다.

사진설명:

1. 게이트 너머에 서있는 모습: 서막을 알린다

2. 게이트를 들어오는 모습

3. 정원의 쟈카린다 나무 아래서 뛰어오는 그녀

4. 집옆의 돌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

5. 자기 방 발코니의 문을 열고 정원을 쳐다보는 모습


이 사진들은 대낮에 찍은 것들이지만 내가 그날 새벽에 보았던 드라마틱한 빛과 색채의 향연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마지막 샷은 그녀를 일부러 발코니의 프렌치 윈도 바로 뒤에 서게 하여 빛의 명암을 강하게 대비시켰다.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곳에서 밝은 빛을 바라보는 숨겨진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천의얼굴을 가진 Laticia

두 번째 촬영을 했던 라티시아 (Laticia). 그녀는 비치에서도 느꼈지만 천의 얼굴을 가진 어리지만 숙성한 아가씨였다. 그래서 그녀와는 얼굴 표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 보려고 애를 썼다. 그중, 비로 아래 사진이 젤 맘에 든다.


마지막 세션이었던 조아나와의 촬영은 포르토 워크숍 중 하이라이트였다. 당시 촬영을 끝내고 돌아 서면서 내 안에서 며칠을 밀어붙여오던 사진에 대한 팽팽한 압력이 드디어 ”펑!“소리를 내며 통째로 터져버렸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마치, 예전 어릴 적 시장에서 뻥튀기 장수가 한동안 불에 뜨겁게 달구었던 동그란 쇳덩어리 모양의 뻥튀기 머쉰을 어느 순간 팡! 하고 터트리던 때 같았다고나 할까?



위의 네 컷 중, 특히 마지막 사진은 나름 많은 공을 들여 찍었고 아직도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실제로는 데이비드호크니의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작품의 오마주였다. 물론 그의 작품이 내재하고 있던 전후의 낙관론이나 호크니가 가졌던 성정체성등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소재와 구도, 그리고 아름다운 색상만을 빌려왔다. 실제로 나에게는 이 수영장 사진이 “점프 인: Jump In“ 이란 단어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로 뛰어든다“ 라는 의미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그의 집에서 수영장을 바라보던 호크니나, 포르토의 빌라에서 또 다른 수영장을 바라보던 조아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한껏 뛰어내리려는 내 자신을 보았다고나 할까? 아니 진짜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 앞뒤 볼 것 없이 힘차게 뛰어들었다 - Jump In!



에필로그

마지막 샷을 찍고 존을 쳐다보며 “시간이 얼마나 남았어?” 물었더니 그가 “2분”이라 했다. 그래서 조아나에게, “Do, whatever you want!“ 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옆에 놓인 비치의자에 털썩 앉아서 눈을 감았다.


그녀도 나도 존도 모두 같은 기분이었다.


포르토 워크숍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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