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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렌즈: 사진가의 눈. 화가의 붓

by Mhkim




렌즈를 바꿨다.

사진이 달라졌다.

화가 모네의 수련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당시의 인상파화가들의 그림보다 한 발 앞서 나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른 인상파 그림들 같이 그의 수련들도 빛의 움직임과 색의 향연에 중점을 두고는 있지만 형상이 또렷하지 않으며 그런 모습은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후기 작품인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들은 거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흘려 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당시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었던 캐더락이 모네의 눈동자를 덮어가면서 사물을 점점 또렷하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얼마 전 캐터락 수술을 받은 남편 역시 세상이 달리 보인다 했다. 흐릿하던 내 얼굴이 갑자기 선명해졌다며 웃었다. 그만큼 사람의 눈은 세상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여준다. 사진에서는 카메라렌즈가 딱 그렇다. 어떤 렌즈를 카메라 바디에 끼웠느냐에 따라 내가 찍는 대상의 이미지가 변한다.


라이카 녹틸럭스 렌즈를 장만했다.

마크에게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수시로 귓전을 스치던 렌즈가 녹틸럭스였다. 마크는 이 렌즈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진가로도 꽤 유명하다. 녹티(녹틸럭스렌즈의 줄임말)는 전에 말했다시피 다루기 힘든 렌즈라고들 한다.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의 망막이 시도 때도 없이 항상 와이드 오픈을 하고 있다면 앞에 보이는 대상의 초점 맞추기가 쉽겠는가. 동공이 그렇게 열려있다면 대낮이면 오초도 못 가서 눈을 감고 말 거다. 거꾸로 어두운 곳에서는 다행이랄 수 있다. 그래서 이 렌즈는 흐린 날이나 그늘에서, 실내에서, 빛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다. 야간 촬영에도 플래시가 필요 없다.


배움의 첫걸음은 흉내내기

하여간 그런 렌즈를 포르토에 갔다 와서 하나 장만했다. 솔직히 마크와 비슷하게 찍고 싶어서 그가 애용하는 렌즈를 샀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렌즈가 하도 무거워 당시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가볍게 하려고 라이카 M11 Mono를 장만하고 녹티중에서 가장 가벼운 렌즈인 50mm F1.2로 골랐다. 그리고 마크와 엘에이 라이카숍 이층의 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 레슨을 받았다. 아래 첨부한 사진들이 그때 찍은 것들이다.


사진 설명: 모델은 S이다. 지난번에 만났던 B의 절친이라고. 그러나 둘은 매우 달랐다. S는 훨씬 부드러웠고 감정선이 다양했다. 악수로 시작했던 우리 둘은 두 시간의 단독촬영을 마치고 허그로 끝을 냈다.


렌즈마다 효용이 다르다.

페북에는 라이카 M 사용자 클럽이 있다. 라이카의 M카메라와 M계열의 렌즈를 사용하는 유저그룹이다. 회원들이 자신의 사진도 올리고 나는 이런 기어를 가지고 있소 하며 자랑도 하고 기어에 이상이 생겼거나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모를 때 질문을 하면 서로들 도와주곤 한다. 그중 한 멤버가 자신이 근래 샀던 녹틸러스 렌즈를 보이며 초점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며 푸념을 하였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마크 드 파올라(내 선생)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가 이 렌즈를 잘 다루니까 그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 녹티는 초점을 맞추고자 애를 쓰는 렌즈가 아니니까 굳이 애쓰지 마라 등등의 포스팅을 하였다. 녹티 주인은 초점 맞추는 게 불가능하다며 아무래도 팔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이 “넌 이 렌즈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샀냐. 이 비싼 렌즈를 돈을 쳐들여 사놓고는 초점이 안 맞는다고 투덜대냐.” 하며 심한 소리를 하였다.


내 딴에는 선생의 이름을 들먹이는 거라 마크를 만났을 때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귀를 쫑긋 세우며 “그래?” 하면서 “가서 그 양반들에게 녹티는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전해줘.” 하며 씩 웃는다.


카메라의 렌즈는 사진가의 눈이며 화가의 붓이다.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냐에 따라 붓의 선택이 좌우되듯, 사진사에겐 어떤 사진을 찍고 싶냐에 따라 알맞은 렌즈의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렌즈가 본 것을 카메라에 이미지로 남기기 때문이다.


처음 산 이 녹티를 어떻게 시용할 줄 몰라 허둥지둥하던 나에게 마크는 렌즈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크: “자, 지난번에 내가 뉴욕 워크숍 때 찍어서 내 매거진의 카버로 썼던 메이쉥의 침대 위 사진 생각나지?”

나: “yes”

마크: “그 사진에서 나는 메이쉥을 내가 서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침대에 눕힌 다음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에 초점을 맞추고 렌즈를 몸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찍었지?“

나: 고개를 끄덕끄덕.

마크: “그렇게 함 찍어봐.”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위 사진들 중 왼쪽 아래의 두 컷들이다. 눈에서 멀어질수록 초점이 흐릿해진다. 이 렌즈는 전반적으로 이미지가 무척 부드럽게 나오지만 두 사진에서 보다시피 프레임에서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무척 중요한 렌즈였다. 촬영 후 결과물들을 보면서 내 눈동자의 움직이는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낯선 붓에 익숙해지기

두 시간의 촬영을 진행하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를 생각했고, 무엇에 초점을 칼같이 맞추느냐를 생각했고 어떤 때는 내가 보는 장소의 초점을 일부러 맞추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그녀의 오른쪽 어깨 위에,

그녀의 왼쪽 두 번째 반지에,

그녀의 신발끄뜨머리에…

렌즈를 갖다 대며

그렇게 그렇게 움직이며,

감정선까지 넣어가면서

정신없이,

몰두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작지만 중요한 점프였다.






에필로그:

이번엔 아들인 B도 구경삼아 참석했다, 나중에 하는 말이, 첨엔 S가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고 두 번째는 내가 렌즈를 갖다 대자마자 그녀의 바이브가 백 프로 워크모드로 변해서 깜짝 놀랐다 했다.


B는 클래식 비올라연주자인데 그래픽 디자이너인 자기 엄마가 늦게 배우기 시작한 사진에 푹 빠져있음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마침, 같이 엘에이로 여행 중 내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부탁을 했었고 마크의 허락을 얻고 촬영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그 워크숍 이후로 B는 그때까지 너무 비싸서, 자격이 없다 오판해서, 손도 못 대겠다고 하던 라이카를 집어 들었고 지금은 나와 같이 사진기에 대해서, 사진에 대해서, 토론도 하고 정보도 나누는 동료가 되었다. 이젠 마크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의 워크숍도 쫓아다니는 열정을 가진 사진가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자기가 더 근사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정말 유명 음악가들의 무대 뒤의 캔디드 샷을 찍는 것이라 한다. 벌써부터 조금씩 시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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