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포토: 한해의 결산 장소
*참고로 인물사진 연재는 각각 일 년 단위로 묶어서 이년의 여정을 담고 있다. 각 편의 마지막은 매년 열리는 파리포토 기간이고 이번이 첫 번 째 방문이었다..
이 년 전 파리포토 기간 중 마크의 워크숍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한 질문이다.
”매년 그곳에 가서 전체의 전시를 마주하면 사진산업에 대한 트렌드를 알 수도 있고 앞으로 오는 것이 어떨지에 대한 감도 잡히지요.“
” 아, 제가 지난 이십 년이 넘게 기프트페어에 일 년에 두 번씩 가면서 알게 되었던 것 같은 혜안이 생기는군요. 잘 알겠어요.“
이 년 전부터 가기 시작했던 파리포토는 일 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사진가나 딜러들, 콜렉터들이 파리라는 도시에 모여 벌이는 사진축제 같았다. 비록 이 년 전인 2023년은 매년 열리던 파리의 그랑팔레가 레노베이션으로 문을 닫아 조금은 후줄근한 장소에서 열려 쌈빡한 맛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사진 산업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약간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또한 그 기간에는 파리포토 외에도 파리 시내 곳곳에서 여러 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며 별도의 특별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우리 역시 워크숍의 일정으로 모델 사진도 찍었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아카이브도 구경했고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위대한 사진가인 살가도의 사무실에서 그의 강의를 직접 듣기도 했다. 임시 전시장이라 어수선했던 파리포토 전시장에도 물론 가 보았다.
일종의 지난 일 년 간의 사진산업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간이었고 장소였는데 그것은 내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는 것을 마크의 워크숍에서도 알게 되었다. 각자 지난 일 년 동안 찍어온 사진에 대한 리뷰셋션이 일정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에게도 일종의 결산장이었다.
“워크숍에서 리뷰할 본인의 사진들을 온라인 파일이 아닌 프린트로 준비해서 가져오셔요.”
파리에 가기 한 달 전부터 세이지는 포트폴리오는 프린트로 준비하라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내가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작품에 한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과 함께 찍었던 워크숍의 모델 사진은 제외하라는 말이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나만의 개인 프로젝트가 있었다. 한국의 어느 승려에 대한 얘기를 다큐사진으로 찍은 것들이었는데 마크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잘됐다는 생각에 파리로 떠나기 한 달 전부터 나는 사진을 고르고 에디팅을 하고 정리를 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가려고 애를 썼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것들을 나의 엡슨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할 요량이었다.
사진설명: 한국의 어느 스님과의 사진 작업이다.
막상 컴퓨터로 열개정도의 이미지를 추려서 프린터로 출력을 하겠다 생각하니 정해야 할 것들이 하나에서 열까지였다. 어찌 보면 나의 자그만 사진 전시회를 기획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내가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열 장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의 통일성이 있으면서 다양한 변화가 보여야 했는데 그 점을 생각하지 않고 찍은 사진들이라 중구난방이었다. 우선은 흑백이냐 칼라냐를 정하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일관성이 있어야 해서 그 점을 보완했고, 각기 흐름에 따라 구도의 변화도 꾀해야 했고, 밝기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도 한동안 생각했으며, 각각의 이미지가 연관성이 있으면서 역동적으로 보이느냐, 등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슨 사이즈로 어떤 페이퍼에 출력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에 대한 고심도 하였다. 혼자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고 많이 배웠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준비과정을 끝내고 막상 프린팅에 들어가니 웬걸, 지난 수년간 써오던 내 잉크젯 프린터가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다. 난감하다. 사진의 색채가 내가 컴퓨터 화면에 보던 것이랑 너무 달랐다.
“이걸 어쩌나…”
떠나기 바로 전날 저녁까지 프린터와 씨름을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에 들게 프린트해서 Matting을 하고 투명 셀로판봉투에 넣어 제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게 만든 후 파리로 가는 짐 싸기를 마쳤다. 액자에 넣기 전단계까지를 속성으로 끝낸 것이었다.
이 과정은 어찌 보면 한 작곡가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는 악보를 제대로 정리하고 난 후 연주가들을 불러 곡을 연습하고 마지막 리허설 단계 직전까지 도달하는 과정같이 생각되었다.
나름 고생 끝에 가져간 내 사진들을 펼쳐 놓으니 아주 창피한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크도 세이지도 제임스까지도 좋은 시선으로 봐주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피드백도 들었던 것 같은데 제임스의 평 외엔 솔직히 무슨 말들을 했는지 또렷한 기억이 없다. 그는 내가 몇 달 전 한국에서 돌아와 온라인으로 보내준 사진은 별로였던 것 같은데 막상 그날 프린트를 마주하니 생각 외로 괜찮아서 놀랐다고 했다.
“나에게는 에디팅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나는 이제껏 사진의 원본 그대로를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내 백그라운드가 그래픽 디자인이라 그럴 거예요. 사진을 찍고 꼭 리뷰를 하고 색 조절에 크롭까지 해서 마음에 드는 상태로 만들지요. 그다음엔 전체적인 흐름을 확인하고요. 물론 없던걸 있던 걸로 또는 반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마지막 결과물을 꼭 확인해요. 그것이 마음에 들어야 끝이 난 거라 생각해요“
그 말을 들은 제임스는 마치 자기에게 없는 기술이 내겐 있는 듯 깜짝 놀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떤 때는 멘토가 멘티에게서 배우는 것도 있구나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또한 나의 그래픽 디자인의 배경이 사진에서 얼마나 소중한 자질인지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파리포토에서 배운 것은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 시키는 장소였던 것 같다.
그중, 경험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이 세계에서 인맥은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다.
사진설명: 제임스의 리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