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장에선 인물사진만이 아니라 사진 전반을 아우르는 흑백사진이냐, 컬러사진이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인물사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서다.)
우버가 목적지에 가까워 오면서 세이지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에 가면 집 안팎에 멋진 곳들이 정말 많아요.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봐요.“ 하고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포르토의 빌라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진짜 터스카니의 빌라 같았다. 그 이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집은 내가 코비드 전 친구와 같이 방문했던 이태리 터스카니의 빌라를 연상시켰다. 물론 크기는 그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포도밭도 있었다. 이만 평은 됨직한 거대한 대지에 약 사백 평 정도의 삼층집에는 작은 채플이 딸려있었고 야외 수영장도 있었고 곳곳에 잘 가꾸어진 정원도 있었고 숲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집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제인오스틴의 영화에서나 봄직한 19세기말 유럽 귀족의 집 같다고나 할까? 집안 곳곳에 위치한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제 자리에서 쓰이는 가구들에서, 화병에서, 조명에서 우리는 그 옛날의 고풍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아름다움에 물들기 시작했다. 이곳이 우리가 앞으로 사 박 오일을 지낼 집이라니 웬 횡재일까?!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한 모양이었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이 집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어로 Saturated Colors 라 말하는 채도가 깊고 묵직하며 따뜻한 독특한 색감이 있었다. 어찌 보면 내가 라이카카메라의 색감이 좋아서 샀노라 하는 바로 그 칼라팔렛이었다. 집에도 나름의 색감이 있다니. 처음으로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의 또는 새집의 하얀 회벽이 아니었다.
담날아침 동틀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그런데 침대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우연히 쳐다본 창밖의 풍경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이건 내가 몇 년 전 피렌체의 새벽에서 보았던 색 아닌가?!“
황급히 내방의 벽조명을 밝혔더니 그 노란색 조명과 창밖에 비치던 새벽의 푸른빛이 당시의 기억을 곧바로 소환시켰다. 황금빛 인공조명의 색감과 푸르스름한 새벽여명의 조화. 해가 서서히 지평선 위로 올라오면서 온 우주를 까만색의 어둠에서 구해내어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이는 그 순간. 트와일라이트(twilight)였다. 환상의 시간이다. (누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곧이어 해가 떠오르면 온 세상의 빛이 순식간에 바뀔 텐데 더 이상 침대 안에서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진설명: 왼쪽 - 피렌체에서 새벽에 마주친 풍경, 오른쪽 - 오 년 후 빌라의 내 방에서 새벽에 찍은 풍경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를 들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모두들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아 적막하다고 할만한 집의 안팎을 혼자서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자인 나에게 이렇게 새벽에 혼자서 맘 놓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제 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포틀랜드의 우리 집에서도 불가능하다. 그곳에선 카요디나 새끼곰이 튀어나올 수도 있어서…)
빌라에는 새벽의 고요한 틈새로 아침의 태양빛이 곳곳에 스며들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채색의 향연이 집안팎 곳곳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날부터 촬영에 들어가야 했기에 장소를 파악해야 했었고 어디를 찍을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였지만 그것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진설명: 젤 위 - 빌라로 들어오는 게이트
두 번째 줄 왼쪽 - 채플의 내부, 가운데 - 부엌의 집기들, 오른쪽 - 거실의 파이어플레이스
젤 아래 왼쪽 - 메인홀의 타일로 치장한 벽, 가운데 - 바닥의 타일에 내린 빛줄기, 오른쪽 - 메인플로어의 회랑에 비친 맞은편 프렌치 윈도의 빛그림자
사진설명: 해가 조금씩 올라오는 수영장 주위의 아침 풍경. 옅은 연두색과 옅은 하늘색의 물이 잘 어울렸다. 온 세상이 신선해 보였다.
사진설명: 빨간색 기와지붕의 색감과 텍스처가 이 집 둘레를 에워싸는 따뜻한 회색의 푸르스름한 화강암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음은 색에 관한 나의 공부와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로부터 일 년 반 후, 파리포토기간 중에 만났던 내 선생인 마크에게,
”당신은 왜 칼라보다 흑백으로 찍는 것을 선호하는가“ 물었더니,
”사진에 색이 들어가면 형태는 뒷전으로 밀리고 색밖에 안 보여서.“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게 왜 나쁘다는 것이지? 아니, 당신들은 형태를 색을 빼어야지만 볼 수가 있다는 말인가?” - 이건 내가 혼자서 한 말.
그리고 이건 “칼라에 대한 질문”을 쓴 조엘 메여로위츠 (A Question of Color, by Joel Meyerowitz)의 책에서 뽑은 글 (사진의 대가이며 특히 칼라사진의 옹호자이기도 하다.)
“칼라는 흑백사진에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흑백이 그래픽적으로 강력하기 때문에 더 나은가요? 그것은 나 자신과의 독백이었다.”
“What is the color doing to the black-white photograph, or is the black and white better because it;s graphically powerful? It was a dialogue for myself.” - Joel Meyerowitz: A Question of Color, Pg 42
"내 생각에 만약 묘사가 정말로 사진 촬영의 내용이라면, 흑백 사진 촬영은 모든 색을 빼앗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을 빼버린 뼈의 그래픽 이미지만을 제공하고 있다."
“I thought: if description is really what photogrpahy is about, then a black-and-white photogrpahy doesn’t describe everything that’s there, because it’s taken away all of the color. It’s giving the graphic i age of the bones none of the flesh.” Pg 53
그러나 나는 나름 이게 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완전히 내 생각인데 나름 두 개의 장르가 이게 더 낫다 저게 더 낫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어서. 나름의 특성이 다른 것이라. 동양화에서 어느 누가 수묵화가 채색화보다 더 낫다 아님 거꾸로가 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없다를 떠나 오렌지냐 사과냐 하는 질문 같아 비교한 글을 읽은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같은 맥락에서 칼라냐 흑백이냐는 서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다. 다만 사진가의 입장에서 어느 장면을 어떤 식으로 찍고 싶으면 칼라가 흑백보다 더 효과적이다 아니다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걸 배워가고자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듀오톤의 어느 색과 어느 색을 같이 써서 찍고 싶다거나 아님 전체의 색상을 어느 식으로 조절하고 싶다거나 하는 점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서 나만의 색을 (흑백이건 칼라를 떠나) 찾아가려 한다. 화가들 역시 이렇게 작업한다.
“어떻게 하면 나의 사진이 칼라냐 흑백이냐를 떠나 나만의 개성을 가지고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나의 화두이다. 그래서 한 달 전 뉴욕에 갔을 때 제임스에게서 필름카메라인 라이카 M6를 빌려왔다. (나를 따라 제임스의 사무실을 같이 방문했던 아들은 “그는 자그만 카메라상을 뛰어넘는 고가의 카메라기어들을 커다란 캐비넛에 가득 가지고 있었어“ 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곳 포틀랜드의 카메라점에 가서 코닥에서 나온 씨네필름 ISO800 여섯 통, ISO400 네 통, Ilford 흑백필름 ISO3600 두 통을 사 왔다. 내가 어떤 색감을 좋아하는지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 디지털에선 기대하기 어려웠던 내가 원하는 색감을 찾아가는 여정에 뛰어들고 있다. 어찌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분들과 결과를 공유하도록 하겠다. 기대하시라! 두근두근….
기어인포:
라이카 M10-R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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