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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 인물사진과 BTS

Behind the Scenes

by Mhkim




사진 프레임 밖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아주아주 옛날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KBS방송국의 세트디자이너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만으로 스물둘. 그때는 정말 멋도 모르고 회사에 다녔다고 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시대도 전 전 대통령이 군사독재를 하던 때라 세월마저 하 수상하였다. 관둔 이유는 사 개월쯤 되니 배가 너무 아파오기 시작해서였는데 병원에 가니 신경성위장병이라고 진단이 나왔다. 밤낮없이, 쉬지 않고 일을 했더니 몸에 탈이 난 것이 아니라 주치의의 진단에 의하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그 후로는 겁이 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무척 애를 썼다.)


너무 아파 운신을 못할 정도가 되어 우선은 나부터 살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육 개월 만에 사표를 썼는데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뭐가 문제라 저러나 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 동안이었어도 그때 싫어하는 일을 한 경험으로 평생을 잘 써먹게 된 것이 딱 두 가지가 있다. 특히 사진을 찍게 되면서 당시의 경험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첫째는, 거대한 공간을 삼차원으로 뚜렷이 볼 수 있는 감각이 생긴 것. 눈대중으로 건물의 길이, 높이, 깊이를 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세트를 설치하려면 저기 있는 기둥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손바닥만 한 평면만 가지고 씨름하던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야를 확 넓혀 주었다.

둘째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이 파악되었고 카메라에 안 걸리는 주위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거꾸로 말해서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것을 보통인들은 상상을 못 하는데 난 그 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BTS (Behind the Scenes):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그런 연유로 이 편에서는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어떤 모습으로 찍는지 모델만이 아니라 그 사진을 찍는 개개인의 모습까지 보여드리고자 한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사진을 배워 왔는지 좀 더 이해가 빠를 것 같아서. 아무리 청산유수로 떠들어대도 그림 한 장 보는 것만 못할 경우가 많다. 여기 실린 상당 부분의 사진들은 내가 아닌 존크라이들러라는 라이카아카데미 시니어매니저의 작품들이다. 그는 매번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우리들 뒤에서 모델과 일하는 참자자들의 모습을 찍어 BTS (Behind the Scenes)란 폴더에 남겨 주었다. 그의 허락을 받고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두 번째 포르토워크숍 후 이틀 만에 먼 여행을 떠나버려 가능하지 않다. 다만 내 생각에 그가 하늘나라에서도 이 사진들을 보게 되면 좋아할 것 같아 마음 편하게 올린다.


사진설명: 아래 두 장의 사진 중 왼편에 찍힌 사람이 존크라이들러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절친인 제임스이다. 이전까지는 J였으나 이제부터는 마크와 세이지, 메리나 존같이 제임스라 풀네임으로 부르겠다.


대서양의 해변가에서

워크숍 중, 젤 처음 진행된 세션인 데다 생전 첨 찍는 바닷가 촬영이라 무척 당황했었다. 세이지 말로도 모두들 죽겠다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는데 딱 한 사람 그렇지 않았던 인물이 있다. 바로 제임스. 그는 포르토에서의 워크숍이 두 번째였고 코네티컷 그의 집이 바닷가와 가까워 비치 촬영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역시, 아무 곳에서나 잘 찍으려면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서 많이 찍어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복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촬영할 동안에 서로 수다 떠느라 누가 무엇을 어떻게 찍었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슈팅이 시작되면 서로의 눈빛부터 달라진다.

사진설명: 젤 아래 석장은 선생인 마크의 촬영 모습인데 역시 모델의 포즈부터가 다르다. 이게 연륜이겠지? 싶다.


그라함와이너리 촬영: BTS

그라함와이너리의 포르토와인은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브랜드이다. 우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이더조 (그들의 $3.99짜리 그로서리백의 유행은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에서 그라함와이너리의 포르트를 취급해서 나는 지난 삼십 년 동안 포르트는 당연히 그라함이라 생각하였다. 막상 포르토에 와 보니 역시 그라함와이너리는 그 많은 포르트 와이너리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와인셀러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두오로 강 건너편 가이아에서도 강이 다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크기도 굉장해서 와인 셀러가 마치 커다란 축구장 하나 정도는 되는 듯싶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와인 시음을 마치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사진설명: 아래 첫 번째 줄의 석장의 사진들은 존이 찍은 나와 모델인 안나이다. 자랑 반, 라이카아카데미에서 마케팅용 프로모션으로도 쓰였던 사진이다. 나는 오크통이 가득 나열된 깜깜한 셀러에서 간간이 비치는 조명등과 천정에 조그맣게 난 창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에 의지하여 사진을 찍었다. 조리개는 와이드 오픈, ISO는 1600. 셔터스피드는 1/25초. 그녀는 모래바닥 위에서 맨발로 나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생전 처음 만난 여자 둘이 무슨 신명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안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 춤을 추었고 나는 정말 재미있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찍었다. 지금 다시 보니 꿈같은 장면들이다.

그 아래 아홉 장의 사진은 내 카메라에 담겼던 안나의 모습. 마치 Wine Fairy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그 넓은 셀러에 맛있는 포도주의 정기를 흠뻑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마치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포르토 시내 촬영: BTS

사람들이 계속 움직이는 시내에서의 촬영. 우선, 엄청 더웠다는 생각이 젤 먼저 난다. 게다가 서로서로 다르게 찍기 위해서는 배경을 어디로 잡느냐가 중요해서 별별짓을 다 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닫혀서 못 들어가는 대신 모델을 펜스 옆에 세워 뒷배경이 마치 감옥의 철창처럼 세팅을 했고, 내 여자친구 S는 길거리에 파킹해 놓은 관광용 앤티크차를 전세 내어 모델을 차 안에 앉힌 다음 자동차 앞유리 너머로 그녀를 찍었다. 나의 두 번째 씬은 올리브유를 파는 가게 안에 들어가 물건을 몇 개 사고 가게의 모습을 촬영을 해도 되겠냐고 흥정을 한 다음 맘 편하게 찍기도 하였다.


사진설명: 아래 다섯 장의 사진들은 성당 문이 닫혀버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펜스밖에서 찍은 장면들. 햇볕이 유난히 강해서 철장의 그림자가 모델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효과를 반영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타이틀은 “거부당한 마음“?

사진설명: 위 오른쪽 사진이 이 촬영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이미지인데 모델을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왼쪽이 들어가는 모습) 나를 바라보라고 하면서 찍은 컷이다. 이런 식으로 조리개를 활짝 열어놓고(F1.4) 손에 포커스를 맞추면 뒤의 얼굴이 아웃포커스가 되면서 사진에 레이어가 생기고 입체감이 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장면이다.


사진설명: 길거리의 투어 하는 자동차를 빌려 사진을 찍었던 S. 지금에야 그녀의 주특기가 거울에 비친 레이어진 모습을 찍는 것이란 걸 알고 나니 어쩌면 가운데 사진이 그녀의 가장 돋보이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설명: H의 표정이 필름디렉터의 그것이란 생각이 확 들게 하는 장면. 또한 오른쪽 사진처럼 극적인 명암을 선택했던 점도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는 왜 저런 콘트라스트를 못 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에야 드는 걸 보면 확실히 사진에서는 그가 선배였다.


포르토 시내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보니…

당시에 내가 못 보았던 장면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꽤 된다. 이래서 리뷰가 정말 중요하다. 아마도 일 년 후에 같은 사진들을 본다면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럿이 모여 사진을 찍으면 서로에게서 배우는 점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같이하는 워크숍을 기를 쓰고 다닌다.




기어인포:

라이카 M10-R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1.4

Adobe PhotoShop

존크라이들러의 기어

Leica SL2-S

Vario-Elmarit-SL 90mm ASPH F2.8


마지막으로 이 사진들로 당시를 기록해 준 존크라이들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RIP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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