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오월초에 뉴욕에서 패션 워크숍에 참여하고 한 달쯤 후인 6월 19일에 태어나서 처음 이베리아 반도로 날아갔다. 포르토에서 열리는 LeicaAkademie Porto Portugal Destination Program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라이카아카데미에서는 미국인들을 위해서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외국으로 사진촬영을 가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22년의 밀란이 그랬었고 이번도 그중 하나였다.)
기간은 6/21-29, 총 8박 9일, 왕복으로 여행하는 날짜를 계산하면 총 10박 11일쯤 된다.. 도착해서 처음 4박 5일은 시내에서 머무르며 반나절씩 세 번의 촬영이 있었고, 하루는 라이카 포르토 공장을 구경 갔고, 또 하루는 그라함 와이너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르트와인의 시음 후 와이너리에서 촬영을 이어갔다. 그 후 나흘은 포르토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빌라에서 다 같이 먹고 자며 내리 4박 5일을 촬영에만 매진했다. 감히 말하건대 뉴욕의 사 박 오일 간의 워크숍은 이 프로그램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훨씬 더 재미있었다. 내 몸과 마음과 온 정신이 사진에만 쏠려있었다고나 할까? 더 이상 사진은 내게 취미가 아닌 (그렇다고 내 밥줄은 아니지만) 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왼쪽 사진: 포르토의 오월에서 유월은 온 시내가, 아니 온 세상이 이 쟈카란다(Jacaranda) 나무의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묵었던 빌라의 게이트 전경이다.
오른쪽 사진: 포틀랜드의 상징인 수탉의 피규린. 기념품 숍에 가면 수탉 천지이다. 너무 많아서 질릴 듯했지만 나도 하나 사서 가져왔는데 볼 때마다 포르토 생각이 나고 무지 정겹다.
요즘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 도시를 구경 가는데 다 이유가 있을 듯하였다. 이곳은 오십 년 전의 서울이 생각나게 하는 오래된 정취와 비슷한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처럼 전쟁의 상처는 없지만 오랫동안 독재의 그늘에 있던 곳이라 서유럽에 비하면 조금 낙후되었다. 그러나 그 낙후했던 덕에 옛날의 정이 남아있는 곳이라 훨씬 정겨웠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크의 말처럼 이곳은 다른 유수의 유럽 도시와는 다르게 번쩍번쩍한 명품숍이 없었고 오래전부터 내려온 가죽공예나 섬유산업의 자취가 여전히 남아있었고 예전 무슬림의 영향으로 타일산업의 발달이 눈에 들어왔고, 길거리에 그라피티가 훨씬 없었고 치안이 좋았다. 음식 또한 맛있었다. 만일 이곳이 내가 태어났던 곳이었다면 다시 가서 살고 싶을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포르토는 아니더라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연어와 비슷한 귀소본능이라고나 할까?)
사진설명:
아래 왼쪽은 포르토에 외치한 라이카 공장에 견학 갔을 때의 모습. 우리는 이곳에서 본 것을 절대로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공장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과연 이렇게 만들어야 그 정도의 명성이 유지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방문이었다. 약간은 현대적인 공방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 오른쪽: 워크숍 첫날 오프닝리셉션으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숙소로 걸어가면서 마주친 색소폰 연주자. 하드록카페의 열린 창문에 걸터앉아 그가 불던 색소폰소리는 무척 감미로웠다.
나머지 사진들: 짬짬이 돌아다니며 찍었던 포르토 거리 풍경. 우리나라의 오래된 골목길을 연상시키던 한도 없이 널려있던 작은 골목들. 그 사이사이로 바라본 도도히 흐르던 두오로 강의 모습. 강 옆 언덕 위에 위치한 포르토 성당, 길 건너편 두오로 강을 바라보는 전경을 가진 무랄하페르나디나 (Muralha Fernandins) 고성 등등… 이 중 이곳 스타일로 지어진 맥도널드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우선 나에게는 포르토시의 크기가 마치 예전 내가 자랄 때의 서울 사대문 안 정도라 도심에서는 모든 곳을 대충 걸어 다닐 수 있어서 맘에 쏙 들었다. 아니 정겨웠다고나 할까? 짬짬이 혼자서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조그만 상점들이 가득 차있는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하는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런 곳에서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을 살거라 생각하니 행복이 저절로 샘 솟아오르는 듯했다.
사진 설명: 그라함와이너리에서의 촬영 후 저녁을 시내에서 다 같이 하였다. 여기서 빠진 사람은 사진을 찍어 준 라이카아카데미 프로듀서 존 크라이들러뿐이다.
이번 워크숍의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J: 나와는 벌써 세 번의 워크숍을 같이한 붙박이 친구. 팔십이 가까워오는 분이지만 정말 건강하고 사진을 사십 년쯤 찍은 것 말고도 사진에 너무나 진심인 분이라 엄청 많이 배운다. 솔직히 마크는 선생이고 살펴야 할 사람들이 많지만 J는 나와 같은 학생신분이어서 좀 만만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나는 멘토만이 아니라 독선생을 따로 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포르토 길거리를 같이 걸으며 스트리트포토를 촬영할 때 “이런 경우 카메라 세팅을 어떻게 하지?” 하고 물으니 “이렇게 저렇게…”라고 하며 거침없는 인포가 좌르르 쏟아졌다.
A: 인도 출신의 미서부 하이텍의 준거물쯤 되는 듯 보였고 베이에어리어에서 살다 지금은 엘에이에 산다고. 사십 대 중반인 듯. 거의 약혼자 수준의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 영국에서 보딩스쿨을 다녔다 했고, 음악은 클래식, 팝, 재즈 등을 아우르며 나도 잘 모르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이론을 설파했다. 소믈리에 레벨 3이며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밑에서 두 번째라고. 처음 들었다.) 음식도 잘 만들어서 빌라에 있을 적엔 팀을 위해 요리도 만들어 내었다. 아마추어 사진가라지만 수준급으로 찍었다.
AA: A의 여자친구인 AA는 푸에토리코 출신의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아주 화려하고 멋쟁이로 보였다. 그런 그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건 이십 대엔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었다는 말을 듣고부터. 하루는 시내에서 쇼핑을 다녀와 자기가 샀다는 커다란 책이 그려진 면티를 보여주며 하는 말이, 어릴 때 아주 가난하게 자랐는데 책을 읽을 때만은 그런 힘든 마음이 사라져서 독서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책 읽는 모습이 담긴 이 티셔츠가 마음에 들어 샀노라고. 속으로 저렇게 화려한 여인에게도 그런 면이 있나 할 정도로 깜짝 놀라는 순간이었다. 약간은 소심한 A를 감싸는 모습은 둘 중에 누가 어른인지 잘 보여주는 아주 성숙한 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여인이었다.
H: 이분은 연세가 지긋한 전직 필름 프로듀서, 교육자, 사진사라고. 평생을 사진과 영상작업을 해오신 베테랑이셨고 여러모로 노련하셨다. 하버드, 예일, NYU에서도 가르치는 양반. J와의 첫 만남에서 둘의 연배를 알아가는 순서가 꽤 특이하게 보였다. H가 대학을 다니면서 베트남에 끌려갈 뻔했다고 하니까 J가 대뜸 대기넘버가 몇이야? 나는 몇 번, 너는? 둘 다 사백 명 안쪽의 수순이었다. (내 남편은 164라고 하던가? 그에게서도 가끔씩 이 번호얘기가 나오곤 한다.) 다들 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던 때를 거쳐 온 세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HH: H의 부인으로 전직 불어 교사셨다고. 선생님답게 아는 것도 많았고 거침이 없었고 당당하신 분이었다.
B: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갔던 중국계 미국인이며 하이텍 엔지니어. 전직 물리학도. 영국에서 교육받은 후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오십이 훌쩍 넘은 듯했는데 싱글이었고 부모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대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마크와는 와이드오픈 클래스에서 처음 만난 지 몇 달밖에 안되었고 원래 오기로 했던 한 사람이 못 오게 되어 자기가 한 달 전에 땜방으로 선발되었다고. 사진을 찍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지만 특유의 과학자다운 성정으로 마지막날 전체 리뷰에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보기 드문 애연가였다.
S: 마크의 워크숍에 가끔 오신다는 여성 사진가. 텍사스 오스틴에 사시는데 워낙은 건축가였다고. 건축을 하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정치적인 그룹에서 일도 많이 하시고 사진을 찍은 지는 약 십 년쯤 된다고 하였다. 나와는 첨 만나는 것이지만 같은 여자라 가깝게 느껴졌다. 포르토에선 사진에 정신이 팔려 별로 친할 겨를이 없었지만 일 년이 지난 후 파리포토기간에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후 절친이 되었다.
M: 나. 연세 좀 드신 초로의 동양아줌마. 그 나이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세상, 특이하다고들 생각하는 듯했음. (설명을 보태면, 이들 미국인 사진사들에게는, 중국인 A를 포함해서, 이렇게 초로의 동양여자가 사진 찍는다고 쌩 난리를 치며 다닌 것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본 적이 없으니.)
메리: 빌라에서 우리의 식사를 책임졌던 세이지의 엄마. 풀타임 비행기승무원. 코비드 기간 동안 한가해져 소믈리에 레벨 2급까지 따신 분으로 나파밸리의 유명한 와이너리며 굉장한 아트컬렉션을 자랑하며 프라이빗 갤러리를 보유한 헤스프레송 에스테이트에서 소믈리에/가이드로 파트타임을 하신다. 영어로 hospitality business에 속하는 일을 하시는데 한국어로 관광이나 손님접대에 관한 사업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정말 차분하시고, 친절하시고, 상대방을 배려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빌라에 있으면서 모든 식사를 책임지시는 그녀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설거지를 도맡았던 관계로 워크숍이 끝날 무렵에는 그녀가 자동차 레이스 광이란 것도 알게 되고 상당히 특이한 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외에 마크와 세이지, 라이카에 대해선 뭐든지 물어보세요 하는 맘 좋은 아저씨 존을 합하면 총 열두 명의 대가족이 한 지붕에서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사진을 찍고 사진만 생각하며 빌라에서 사 박 오일을 같이 살았다. 모두 다 합하면 팔 박 구일을 함께 했던 준 가족쯤 된다.
이상이 나에게
이베리아 반도 서쪽 중간쯤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포르토가
그냥 포르토가 아닌
특별한 포르토가 된 까닭이다.
사진설명: 포르토는 작은 도시였지만 라이카공장이 있어서인지 꽤 잘 갖추어진 라이카스토어가 있다.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넘어지면 코 닿는 그곳 이층의 회의실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특이하게도 포르토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은퇴한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중 하나이다. 마침 예전 회사 다닐 때 동료였던 존이 그의 부인 조운과 일 년 전에 이민을 간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도착한 날 그들과 포르토에서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두 부부에 의하면 포르토는 치안이 좋고, 물가도 미국보다 약 30-40%가 싸고, 또한 지형적으로 유럽에 속해 있어 여러 나라로 여행 다니기도 참 좋다 하였다. 영어도 대충 통하고 물론 기후도 좋아서 여름과 겨울이 아주 춥고 덥지 않다고 하며 대단히 만족한 듯. 포르투갈에서는 그곳에 오 년을 살고 그동안 포르투갈어를 계속 배워 온 기록만 있으면 영주권이 나온다고. 그들은 아마도 그곳에 영구 이민을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기어인포:
라이카 M10-R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 1.4
라이카 Q2 + 27mm F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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