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린드버그는 패션 사진촬영에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양반에 대해서는 나의 첫 번째 브런치북인 ParisPhoto, 2024의 13회에서 소개한 바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패션잡지 사진에 첨으로 스토리를 도입했었는데 나는 그를 작년 겨울 파리 디오르갤러리 전시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뉴욕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패션모델들과 촬영하는 너무나 도시적인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들이 당시 입었던 아름다운 의상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당시 그의 전시회를 보면서 그로부터 일 년 반 전 참가했던 마크와 세이지의 뉴욕 패션포토 워크숍이 왜 그렇게 진행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린드버그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의 촬영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면서, “아, 내가 뉴욕패션 워크숍 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몰랐구나.“ 하면서 큰 그림이 그려졌다. 역시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니었을 것들이 몰랐을 경우 어마어마한 차이를 불러온다는 것, 그래서 많이 보고 열심히 배우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고풍 있는 밀란과 달리 뉴욕은 그 도시 특유의 미적 감각이 있다 - 약간은(어떤 경우는 매우) 거친 도시의 미: Urban beauty라고 생각한다. 빌딩의 정글에서 느껴지는 야수적인 면면이 하다못해 자연이 존재하는 센트럴파크에까지 연결된다. 당시는 그런 세팅이 얼마나 경험하기 힘든 것인지 잘 몰랐다. 게다가 아주 최고는 아니라도 거의 비슷한 수준의 패션모델들과 그 수준의 의상과 그 정도 레벨의 스태프들과 함께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패션화보를 찍는다는 것이 아마추어 사진가에게는 넘사벽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이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실무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 담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 또한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들었다.
(왼쪽은 내가 찍은 사진. 뉴욕의 어반 풍경 속의 그녀를 담고 싶었다. 사진은 내가 그녀 앞에서 같은 페이스로 뒷걸음치며 찍은 것이라 그녀의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마크가 즐겨하는 촬영법이다. 난 무서워서 잘 못하는데 그때는 눈 딱 감고 무대뽀로 뒤로 빠르게 걸으며 찍었다.
오른쪽은 2024년 말 파리의 디오르 전시관에서 관람했던 피터 린드버그가 뉴욕거리에서 찍은 패션 사진. 현대적인 도시의 거친 모습을 한 공사장과 모델의 환상적인 시폰 드레스들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스타일리스트, 의상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전문가가 아닌 우리의 촬영에 같이 다닌다는 것은 대단한 호사이다. 돈도 돈이지만 마크의 명성이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어쨌거나 이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내보는 내 사진들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이유는 노련한 스태프들 덕이리라. 나의 사진은 역시 초창기라 세련된 자연스러움은 확 떨어지지만 다시 보니 그때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는 알게 되었다.
첫째, 피사체에 떨어진 빛과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이런 빛의 조각들이 얼룩이라 생각하고 피하려고만 했었는데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당시의 나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은 지 채 일 년도 안된 초짜였다. 테크닉이란 게 아예 없었고 지금도 그리 만족할만하지는 않지만 우선은 찍고 나중에 검토한다. 당시의 빛과 상황은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므로.
둘째, 피사체의 움직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들의 내면의 모습에만 얽매이지 않았고 사진에는 다른 재미있는 요소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촬영의 후반부에는 아예 나도 그녀들과 같이 뛰었고 움직였다. 이 글에서 커버로 쓴 사진을 찍을 때는 (왼쪽 사진) 모델에게 공원 저쪽으로 뛰어가면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봐 줄래 했더니 자기더러 좀 심하게 운동시키는 것이 아니냐고까지 하였다. (아이고, 미안해라.)
(젤 위의 사진들은 왼쪽 위의 그림인 ”마르셀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의 오마주이다. 물론 멀티플 익스포주어 (multiple exposure)는 아니었지만 시간의 간격을 가지고 그녀의 모습을 찍어갔다.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사진이다. 또한 바로 위의 페덱스트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역시 걸어가는 그녀 뒤로 딱 알맞은 양의 컴퍼니로고가 보이게 찍었는데 역시 생각 밖의 연출이었다. 급하면 이렇게 못해봤던 생각이란 것도 하게 된다.)
셋째, 초점이 맞고 안 맞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화면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위의 두 장의 사진은 의도적으로 하나는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하나는 분위기만 잡으려 흐릿하게 찍었다. 이런 식으로 찍은 사진들은 실제 업무로 연결되는 상황이었다면 에디토리얼 디자인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스토리에 맞추어 알맞은 이미지를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줄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런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초점 맞추는 것에 대해 조금씩 배워간다. 필(feel)이 있고 없고 가 무경험자과 유경험자의 차이라…
넷째, 모델의 옷과 배경의 조화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뭔가가 조금씩 더 보이기 시작했다. 네이처 사진가인 여자친구 A의 말을 빌면 지난 십삼 년 동안의 사진작업을 하면서 확실히 더 많이, 더 잘, 보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나 역시 그 점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위의 두 사진은 같은 모델의 같은 드레스이지만 배경에 따라 분위기가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다섯째, 이것은 다음 장에서 얘기하고자 한다. 또 한 번의 점프가 있었다.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죽을 맛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때는 내가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전체 셋업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음이 지금도 아쉽다. 그러나 당시는 그것이 나의 최대치였으리라. 이년이 지나서 내가 나의 상황이 어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많이 배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한 번 이런 식의 패션사진 워크숍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을 보니 나 자신이 신선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름다운 옷과 멋진 모델들의 사진은 여자인 나의 가슴까지 벅차오르게 한다. 하물며 그런 모습을 내 카메라와 렌즈에 담는 것은? 환상이다. 말할 필요도 없다.
(위의 두 사진들은 파리에서 보았던 피터 린드버그의 사진들을 찍은 것이다. 특히 왼쪽의 사진은 크게 확대해서 보시면 그림자 속에 숨겨진 스토리가 드러난다.)
기어 인포: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1.4 + LeicaM10R
editting software: Adobe Photo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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