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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구름 Oct 22. 2022

새로운 보금자리

13년 만의 이사가 주는 생각들.

지난 두 달간 이사를 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사가 처음도 아니었지만 이번 이사만큼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고생한 적은 처음인 듯하다.


전에 살던 집은 세를 주고 나왔다.   남한강이 넓게 내려다 보이는 한강뷰 집이었고 10여 년 전 여주라는 지역에 몇 안 되는 브랜드 아파트라고 해서 이사했다가 내리 13년을 살았다.

9층에 먼저 전세를 들어가 살다가 2년 만기가 되었을 때 집주인과 이야기가 잘 되어 부동산을 끼지 않고 그냥 집을 인수해 살았다.   멋진 한강 조망이 참 좋았는데 어느 해인가 빌라촌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길게 가로지른 한강뷰를 살짝 끊어 놓았다.   그래도 전혀 막혀 있는 뷰가 아니었기에 살다가 우연찮게 살고 있는 동 바로 4층 위 12층 탑층이 매물로 나온 걸 알고 우리 집을 내놓고 탑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남한강 쪽의 가장 끝자리인 동이라 계단식으로 층수가 달랐던 아파트였는데 맨 끝 라인 꼭대기 층이었던 12층에서의 생활은 가려져있던 한강뷰를 다시 볼 수 있었고 탑층이라는 매리트로 천정 층고가 다른 층보다 2배는 높은 집이라 개방감이 좋고 더 넓어 보이는 집이었다.  


그렇게 4년을 잘 보내고 남한강의 기운을 받아 두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을 했고 나는 교감 연수를 받아 발령을 기다리면서 작은 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그래서 살았던 집을 처분하기 아까워 세를 주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니 이렇게 큰 집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물건들 속에서 살았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요즘 미니멀리스트가 유행같이 번지는 듯한데 이사하면서 이렇게 많은 물건들 속에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이사하면서 많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아직은 정리할 것이 많이 남았지만 한 달여간 새로운 집도 이제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이번 이사로 새로운 물건을 살 때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집에서 가장 작은방을 차지한 나는 그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아늑한 내방이 생겨서 좋다.  


 20살이 될 때까지 우리 두 딸들은 항상 한방을 같이 써왔다.  그 전 집들도 방은 세 개였지만 나의 서재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옷장과 컴퓨터, 내 물건 등이 뒤죽박죽 섞인 이상한 방을 유지하면서 아이들의 내방의 로망을 이뤄주지 못했었는데 이번 이사에서는 큰아이, 작은아이 각자 방 하나씩을 주고 작은 알파룸을 내 서재로 꾸미게 되었다.


아이들은 처음 쓰는 자기 방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 방을 꾸미는 데에도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하여 주고 선택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딱 백만 원씩을 통장에 입금해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을 맘대로 사라고 했더니 알아서 침대 알아보고, 책상 주문하고 의자 사고, 조명사고 이불 사고, 커튼 달고 재밌게 방을 꾸몄다.

 그래서 나름 깔끔한 20살 아가씨 방이 되었다.


나의 방은 원래 아이들이 쓰던 책상 두 개를 배치하고 컴퓨터를 메인으로 설치해 놓았다. 거실에 있던 수족관이 갈 곳이 없어 물고기들을 방생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방 식구들로 들여놓았다.  새로 수족관 정리도 해 놓았더니 많은 구피 식구들이 방을 채워준다.


 안방은 결혼 후 20년이 넘게 쓰던 장롱을 이제 보내고 새로운 붙박이장을 들여놓았다. 나는 여닫이 문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 이사에는 집사람 의견을 듣기로 해서 슬라이딩 장으로 했다.  가구도 소파, 침대, 식탁 등 대부분을 새로 들였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새 살림 알아보느라 바빴던 나날을 보냈었는데 이제 다들 잘 들어와 자리 잡힌 모습을 보면 그래도 결혼 22년 차에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라 좋고 흐뭇하다.


 가전도 원래 쓰던 티브이만 빼고 세탁기, 냉장고, 건조기, 식기세척기, 에어컨 등 다 바꾸게 되었는데 쓰던 것도 좋지만 역시 가전은 새 가전이 좋더라. 성능도 좋고.   

 정수기가 되는 냉장고를 사서 이제 생수를 사다 나르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편하다. 얼음도 저절로 얼려서 얼음 칸에 채워지니 아이스커피 만들기가 쉽다.  세상 편한 시대라 너무 좋은 것 같다.

이사라는 큰 이벤트를 겪다 보니 스트레스받는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의 새로운 삶도 왠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번 집보다는 층고가 낮아 걱정이었지만 바로 앞에 산의 나무가 보이는 편안한 뷰라서 리조트 놀러 온 느낌이고 안정적이다.

 나이 들면 땅의 기운을 받으면서 살라 했는데 지금 딱 그러고 있는 듯하다.


우리 집 귀염둥이 할아버지 애완견 토토는 이사해서 야외 배변을 한 달째 실천 중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족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시키며 배변시키고 있는데 토토 덕에 더 건강해지는 중이다.  원래 개 키우는 사람이 안 키우는 사람보다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나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새로운 숲세권 보금자리에서 더 좋은 일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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