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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구름 Feb 18. 2023

치악산 비로봉 오르기 (2013, 2023)

10년 만에 치악산 비로봉 오르기

산 이름 중에 악이 붙은 산들(설악산, 치악산, 월악산등)은 보통 바위로 된 경우가 많고 산이 거칠어 등산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산이기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산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산중에 여주 가까이에 있는 원주 치악산은 집에서도 한 시간 이내로 가깝고 접근성이 좋아서 도전하기에 어렵지 않은 산이었다.  

 중학교 때에도 특별활동(그 당시에는 특별활동시간을 한 달 몰아서 마지막주 토요일 몰아서 하루종일 특활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동아리도 등산부일 정도로 등산을 즐겨하고 좋아하던 나는 2013년 연구년 시절에 블랙야크 명산 40 도전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등산한 치악산(1288미터)을 10년 만에 올랐다.

치악산 황골 탐방지원센터 입구
치악산 등산 지도

 방학도 이제 막바지이고 담주부터는 새로운 학년시작을 위한 워크숍 등 출근을 하여야 하기에 요 며칠 시간을 재보다가 마침 날씨도 괜찮고 미세먼지도 없는 날이기에 조금 늦은 12시에 등산채비를 하여 집을 나섰다.

치악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 경로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길은 구룡사 쪽으로 출발하여 사다리병창길로 오르는 길이고 내가 10년 전 올랐던 길은 치악산 비로봉을 최단시간에 오르는 황골탐방지원센터 길이다.  10년 전 오를 때도 뭐 이런 길이 있지 (10미터 오르면 쉬어야 하는 경사가 무지막지한 길)하면서 올랐었는데 이번에도 사람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등산초보, 등린이, 저질체력자는 황골코스로 가지 마세요. 너무 힘들어요)

등산이 주는 행복은 정상 정복을 위한 목적이 있는 도전이라서 성취감을 주고, 숲이 주는 고요함과 힐링과 나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고독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등산에서는 10년 전 연구년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가지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나의 교사 생활 1년을 잘 마무리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2013년의  나

10년 전에는 없었던 크진 않은 국립공원 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하고 바로 아스팔트로 된 포장길(임도)을 따라 입석사까지 가야 한다.  근데 이 임도길 경사가 엄청나서 제대로 등산하기도 전에 사람 진을 쏙 빼놓는다.  다녀와서 그 코스로 등산한 블로그 글을 몇 개 봤는데 다들 같은 맘인 듯하여 위로가 되긴 했다.  

2023년의 나

입석사를 지나 황골길이 시작되는데 황천길인지 황골길인지 정신없이 너덜바위지대를 올라야 한다. 길이는 1.2킬로미터정도 밖에 안되지만 워낙 급경사에 돌계단 지역이라 오래간만에 등산을 하는 등산초심자인 나는 엄청 쉬엄쉬엄 가야만 했다.

너덜지대를 지나 능선에 다다르면 그래도 조금 수월한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도 결코 쉽진 않다. 또 강원도 산이라서 중간지대 넘어서는 아직 산에 눈과 얼음이 남아있어 아이젠을 차고 올라야 해서 더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원래 태백산 갈 때 쓰려고 사놓았던 (10년 전 사놓고 한 번도 못쓴) 아이젠을 이제 개시하게 되었는데 쇠와 실리콘으로 된 아이젠을 추가로 착용하는 것도 저질 체력이 된 나에게 엄청 시련을 주게 된다.

어찌어찌 오르다 치악산 최고봉은 비로봉을 약 300미터 앞에 두고 엄청난 급경사와 계단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만 나의 두 다리가 기권을 외친다.  계단의 높이도 높고 두꺼운 중등산화에 아이젠까지 끼우고 오르니 최근 등산을 하지 않았던 두 다리에 쥐가 나기 직전까지 간 것이다.   

 이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첫 번째 선택.  무리해서 올라가면 다리가 털려서 자칫 하산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시간도 늦게 출발한 덕에 어두울 때 하산을 하다가 조난이 되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울철 황골코스는 오르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이대로 아쉽지만 하산하기!

 두 번째 선택. 여기까지 왔는데 초심을 잃지 않고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서 오르려고 왔는데 조금 무리되어도 살살 올라서 정상에서 무겁게 싸 온 컵라면을 먹고 심기일전하여 내려갈 체력을 추슬러 보자.  정상으로 도전하기!

 한몇 분 간 숨 고르기를 하며 고민하다가 두 번째 선택을 하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올라보고 좀 쉬면서 체력을 충전해 보자고 말이다.


 이미 두 다리는 내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후들후들 털린 다리를 등산스틱에 의지하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드디어 마주한 정상.  치악산 비로봉.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잠깐 힘이 나서 한 바퀴 돌아봤다.  치악산은 정상에 세 개의 돌탑이 있다.   그게 치악산 비로봉의 상징이기도 했는데 10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정비된 모습이 비교되면서 참 이 높은 곳에 이 돌탑을 쌓은 분의 수고도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10년 전에는 없던 데크로 정상부를 잘 둘러놓아서 살살 돌아보면서 다리 근육을 이완시키고 떨어진 체력은 컵라면과 달달 커피 한잔으로 달래 보려고 물을 부어 놓았다.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 맛이란 안 먹어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마시라.   정상에서 보는 강원도의 산맥들도 역시 멋있고 10년 전 그대로였다.

 원래는 상고대를 보았음 했는데 정상의 한 나무 끝에 상고대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몇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컵라면과 커피를 마시고 하산 채비를 하였다.  내가 출발한 시간이 늦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어두운 밤길을 내려가려니 부담스러워서 약 20분여를 정상에서 보내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래도 하산길은 무릎만 조심하면 큰 체력이 소모되진 않아서 살살 내려갈 수 있었는데 정상에서 먹은 탄수화물과 당으로 겨우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아이젠, 등산 스틱과 무릎보호대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헬기 타고 집에 갈 수도 있었지 싶다.

중간쯤 내려와 얼음이 없는 곳에서 아이젠을 벗고 너덜바위길을 내려와 입석사로 밝을 때 내려올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조난을 걱정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데 내려가는 임도길이 또 엄청 다리에 부담을 줘서 반은 뒷걸음질을 치며 내려왔다.   이제 황골길로는 치악산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본 석양은 멋졌다.


10년 전도 힘들었지만 나이 마흔이었을 때와 쉰이었을 때의 차이는 큰 듯했다.  그동안 꾸준히 체력을 길러오지 않는 나 자신도 반성하면서 다음 10년 후에 사다리 병창길로 비로봉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등산 3일째인 오늘도 다리 알 배긴 게 안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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