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화 Nov 23. 2021

아빠 손에 들린 꽃

58년 개띠 해병대

꽃 누르는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아빠였습니다.


운동 다녀온 아빠의 손에 꽃나무 가지가 들려있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58년 개띠에 해병대를 나오신 아빠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저 문장이 어떤 걸 말하는지     


한 번도 손에 무언가를 들고 집에 오신 적 없던 아빠가 어느 날 문득 제 이름을 부르며 “야~!” 하고

전달해 주신 벚꽃나무 가지


엄마도 한 번 못 받아본 꽃을 제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종종 꽃을 꺾어 주십니다.     


엄마가 가져다주는 꽃과 아빠가 가져다주는 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들꽃을 곱게 모아 주시고 키가 큰 아빠는 꽃나무 가지를 통째로 가지고 오십니다.


키 큰 아빠가 엄청 큰 꽃나무 가지를 들고 서 있으면 저 가지를 어떻게 꺾어서 여기까지 가지고 왔지? 란 생각과 함께 참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아빠가 꺾어 오는 가지는 아는 집에서 허락을 받고 가지고 오시는 겁니다.)

    

지금은 농사꾼의 기술로 다양한 꽃씨의 싹을 틔워주고 계십니다. 똑같이 같은 환경에서 옆에 제가 심은 씨앗은 싹이 잘 나지 않지만, 아빠의 손을 거친 씨앗은 엄청 잘 자라는 걸 보면 항상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제 목표 때문에 불편한 몸으로 밭을 일궈 주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빠가 꺾어 준 꽃과 키워준 식물들은 때에 맞춰 꽃 말리는 전용 시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오랜 시간이 걸려요.

하나씩 하나씩 시트에 펼쳐 널어주고 눌러서 4~7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잘 누름 된 압화가 만들어집니다. (꽃별로 2주 넘게 걸리는 꽃들도 있습니다)   

아빠가 키우는 목단

  

압화는 주변 습기에 민감해서 오랫동안 잘 보관하려면 실리카겔이 들어있는 꽃봉투에 담아 보관합니다. 처음 꽃을 말릴 때는 언제 어디서 채집한 꽃, 아빠가 가져다준 꽃, 이렇게 모든 꽃 종이 위에 기록을 했었습니다.

어쩌면 이때가 제가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일기도 한 줄 안 쓰다 '2019.5 oo과 함께 / 할미꽃' 란 짧은 기록들이 몇 년 뒤 꽃봉투를 열었을 때 평범한 꽃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은 처음 취미와 달리 직업이 되어 누름한 꽃이 많아 다 기록하긴 힘들어 몇몇의 기억하고 싶은 꽃들은 봉투 위에 적어둡니다.


잘 누름 되어 보관된 꽃들은 이제 물감이 되고, 핀셋을 잡은 제 손은 붓이 되어 꽃잎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꽃잎으로 그린 풍경에는 꽃잎이 새가 되기도 하고 나무껍질이 바위가 되기 하고, 곱게 염색된 옥수수 껍질과 양파는 화려한 물고기가 되기도 해요.    

 

엄마가 모아준 옥수수 껍질


작품에 들어가는 소재는 꼭 부모님의 이야기가 담긴 소재를 하나라도 넣으려고 합니다.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부모님께 보여 드리는 거예요.

어린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부모님께 자랑하는 것 마냥    

 

“나 이번에 이거 만들었어~!!”   

  

그리고 이 말도 꼭 합니다.   

  

“이 꽃 지난번에 아빠가 가져다준 꽃으로 한 거야~”   

  

많은 소재들 중 일부분이지만 아빠가 가져다준 꽃을 엄청 강조하면서 이야기하면 자신이 가져다준 꽃이 잘 쓰였다는 것 때문인지 그냥 딸이 만들었다는 것 때문인지 아빠의 얼굴에 뿌듯함이 보입니다.

뿌듯해하는 아빠의 얼굴을 보면 꽃 누르는 일에 대해 한 번 더 감사하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꽃 누르는 일을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