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기록들

6. 아침의 초인종, 그리고 오후의 한숨

by 나예

오늘 아침, 출근 준비로 분주히 움직이며 아이를 깨웠다. 며칠 전만 해도 혼자 씩씩하게 일어나던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이불 속에서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딸아이는 목이 아프다며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학교에 가겠다고 하더니, 곧 짜증을 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몇 번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어, 그냥 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대문에서 삐삐삐삐— 요란한 락 누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침에 우리 집을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누구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혹시 도둑인가, 무슨 사고라도 난 걸까. 발끝까지 서늘해지며, 그 짧은 몇 초가 한참처럼 길게 느껴졌다.

조심스레 도어 뷰어를 들여다보니, 아침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끔 뵙던 할머니가 서 계셨다. 늘 의자가 달린 노인 보행기를 밀고 다니시던 분. 그 보행기에는 언제나 한 장의 메모지가 붙어 있었는데, 집 주소와 아들, 며느리의 전화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단순한 글씨 몇 줄이 아니라, 혹시라도 길을 잃었을 때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 줄 마지막 끈이라는 사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부지런히 운동을 나서는 모습에 감탄했지만, 보행기에 붙은 메모를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서늘해졌다. ‘언젠가 나도 저 보행기를 밀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자조적인 생각이 스칠 즈음, 문득 얼마 전 아침이 떠올랐다.

골프 라운딩을 가느라 분홍색 치마를 입고 서둘러 나서던 날, 그분이 나를 보며 활짝 웃으셨다.
“어머, 어쩜 이렇게 예쁘냐. 치마도 화사하니 예쁘고, 머리도 예쁘네. 다 예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순간이나마 나는 20대 아이처럼 예쁘게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쉰을 넘긴 나이에도 누군가에게 여전히 젊고 빛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뜻밖의 위로처럼 가슴에 남았다.

문을 열고 나가, 지나가며 보았던 그 주소를 다시 보니 우리 집 위, 위, 위층 같은 호수에 사는 분이었다. 인사를 건넸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내가 왜 여기 왔지?” 하며 어지럽다 하셨다. 보행기 가방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챙겨드리고 조심스레 부축해 10층 집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벨을 누르니 며느리분이 나오며 “어머니,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걱정했잖아요” 하며 반겨주셨다. 순간 마음이 짠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혼자 부산에 계신 엄마가 떠올랐다. 나이 들어 혼자 지내실 엄마의 모습과 언젠가 홀로 남아 있을 내 모습이 겹쳐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묘한 쓸쓸함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급히 집으로 내려오니, 딸은 여전히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목이 아프다며 늦게 등교하겠다고 했다. 어제부터 괜히 짜증을 늘어놓더니, 아침에도 같은 모습이었다. 더 이상 다그치지 않고 그냥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회의 전후로 전화를 수차례 했지만, 아이는 받지 않았다. 걱정만 쌓여가다 결국 선생님께 연락해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등교가 어렵다”고 전했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겨우 연결이 되었는데,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화부터 냈다. 많이 아프냐는 말 대신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니, 어디가 아프니” 하고 묻자, 아이는 코가 막혀 맹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제야 아픈데 혼자 있는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올해는 휴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남은 날이 거의 없었다.

직장맘의 하루는 늘 이렇다. 아픈 아이를 집에 두고 나와야 하는 미안함,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 오늘만큼은 아이 곁에 할머니라도 계셨다면 덜 불안했을까. 나 편하자고 친정엄마와 떨어져 지낸 건 아닐까, 많은 생각이 스쳤다.

결국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한숨을 삼키며 글자 몇 자를 남긴다. 빨리 하루가 지나, 집으로 달려가 아이 곁에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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