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성적인 회사원 Oct 07. 2023

내성적인 회사원의 이야기

페리카나 치킨을 먹으면서 하나씩 해보자

나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언제 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적에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과 행동을 한 것 같다




어느순간 부터 나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부탁을 잘 하지 못하였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때도, 음식을 고를 때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건 친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괜찮다'며 가만히 있었다.




"나는 괜찮으니 너네들 하고 싶은거 해"

"나는 괜찮으니, 먹고 싶은거 먹어"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길 바랬던 것 같다.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길 의도했다. 남을 생각할줄 아는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정받는 것, 칭찬을 받는것 말이다.




이 인정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친구, 가족, 상사, 연인 등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서 받는 인정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당히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인정이다. 이렇게 살다보니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 친구에게는 같이 놀때 재미있는 친구

- 가족에게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자식

- 상사에게는 하나를 시켜도 열을 해내는 열정적인 직원

- 연인에게는 늘 설레는 데이트를 선사해주는 그런 사람




나는 이 모든 것을 노력해왔고, 인생이 잘 흘러가는 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았고, 나는 그들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회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 까지 말이다.



작년 내 생일에서 4일이 지난 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하여 회사에서 스트레스성 실신으로 쓰러져 죽을뻔한 사고를 겪었다. 회사에서는 나를 욕설, 폭행 등으로 지독하게 괴롭히는 상사가 있었다. 나는 이 상사에게도 잘 보이기 위해 정말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이 사람의 괴롭힘이 감당이 되지 않아 회사에서 쓰러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게 무었인지 아는가??



사람이 한번 죽을 뻔한 사고를 겪고 나면 나 자신이 최우선이 된다. 자신의 감정, 몸상태, 말과 행동 등 사람들이 이것을 손상시키거나, 건드는 일이 발생하면 과격하게 반응하게 된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을 인정받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노력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이 없는 것이였다. 정상적인 몸상태로도 하기 어려운 것을, 생명이 위협받은 상태에서 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좋은 친구, 훌륭한 자식, 일 잘하는 후배, 멋진 남자친구등의 역할 놀이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더라. 그들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멀어져가는 사람들은 가만히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다 보니 점점 외부로 향하던 나의 모든 에너지가, 이제는 나의 내부로 향하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져 가면서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 였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해왔는데, 내가 힘들떄는 다 떠나가는구나' 하는 감정이다.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슬퍼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더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겠다.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고 난 후 삶이 허무해져 갔다. 나는 당시에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나 자신의 생존만이 최 우선이였다. 



나는 눈치가 빠른편이다. 성향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 능력이 길러진것 같다. 평생을 해왔으니 눈치가 안 빠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표정변화, 분위기, 말투, 행동 등을 다 파악해야 한다. 변화를 알아채고 각각의 사람들마다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면 싫어하는 구나

- 이렇게 행동하면 좋아하는 구나

- 이런 대화주제가 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구나

- 저 사람은....

- 이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평생 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파악이 된다.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주고, 이럴때는 이런 장난을 치고, 개그를 하고 말이다. 이렇게 맞춤형으로 상대해 주는데 나를 안좋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은 만난다거나 모임에 다녀오면 진이 다 빠졌다. 



시시가각적으로 변하는 표정과 말투 분위기를 캐치해 내어, 화제를 전환한다거나 다른 사람은 소외 받지 않도록 말을 건내준다거나 하는 행동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겠는가! 그래서 주말 하루는 꼭 집에서 얌전히 쉬어줘야 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외향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다. MBTI 를 기준으로 하면 나는 80% 이상의 내향형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눈치 게임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스트레스성 실신으로 쓰러지고 난 후 사람들은 나와의 관계를 어색해 하거나, 두려워 한다. 나를 피한다.








눈치가 빠른 나는 안다. 이 거리감이 하루 이틀만에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심적으로 지쳐있는 나는 나와의 거리를 넓히는 상대방에 더해서 나 역시 거리를 둔다. 거리가 더 멀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눈치를 보고, 배려해주고,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도 이 기분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졌을 때 얻을 수 있는 '자유'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 '개방감' '시원함' 이 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게 뻥 뚤린 느낌이라고 할까나

답답한 가슴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나

몸이 가벼워져 발걸음이 산뜻해 지는 느낌 말이다




나는 이것은 단순하게 '자유'라고 말하려 한다. 이 기분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 좋다. 개운하다. 그래서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근데 신기하더라. 정말 단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말 단 하나도 모르겠더라. 이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동안 "나는 괜찮으니 너네 하고 싶은거 해" 라고 말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것은 단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참 재미있었다. 눈치를 보면서 주변에 맞춰주는 삶을 사느라 '나 자신'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는 '나' 라니 말이다. 아 물론 단 하나 알고 있는 것은 있다. 내가 페리카나 양념반 후라이드 반 치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나하나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말이다.  



우선, 단 하나 알고 있는 사실, 즉 페리카나 치킨을 먹으면서 이제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