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우는 일

by 김밍키

아이 맞을 준비로 집 안이 빠르게 포화되어 간다. 신혼집을 꾸미던 초기에 거실의 서재화를 꿈꾸며 공간에 비해 큰 책상 겸 식탁과 넓은 책장을 들였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었다. 결국 처분하기로 마음먹고, 짧게나마 애착을 쌓았던 책장과 이별했다. 중고거래 앱에 ‘나눔’으로 올리자 금세 새 주인이 나타났다. 속으로 ‘우리 애 잘 부탁합니다’ 하고 작게 당부했다.


커다란 가구 하나가 빠지자 거실은 생각보다 넓어졌다. 빈 자리에 찬 공기가 먼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용달 기사님이 지나간 한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은 우선 김 서린 베란다 한쪽으로 겹겹이 쌓아 두었다. 이전보다 작은 책장으로 새로 들일 예정이라, 기존 책들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비교적 재미가 없어 재독 의지가 낮은 책들을 중심으로 과감히 골라냈지만, 여전히 한참 더 줄여야 한다.


아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일인데도, 마치 내가 사랑하는 것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나와 작별하는 과정 같기도 했다. 책장이 빠진 자리에 아이가 활동할 매트와 모빌 등이 들어왔다. 나만의 다락방이 사라진 풍경은 어떤 미래가 성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미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걸까. 마음 한켠이 황량하다. 책장 하나를 비운 일은 나를 지우는 일의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할 텐데 말이다.


마음의 준비는 이렇게 제자리걸음이지만 몸은 저 혼자 골똘히 앞서간다. 배가 간헐적으로 단단해졌다가 풀린다. 수축을 반복하며 자궁을 비워낼 준비를 하는 듯하다. 뱃가죽을 뻥뻥 차던 발길질은 줄고 큰 덩어리가 꿈지럭 이동하는 느낌만 든다. 얼마나 비좁을까.


손발은 띵띵 부어 있다. 특히 오른손은 주먹 쥐기도 힘들고 아프다. 돈 버는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모두 이 손으로 해야 하기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내겐 안마가 절실하다. 하지만 남편은 마사지에 젬병이다. 눌렀을 때 시원한 지점을 이렇게까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게 신기한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해주기도 싫어한다. 부탁하면 늘 미뤄진다. 이따가, 내일로 미뤄진 약속은 어느새 잊힌다. 그에겐 다른 장점들이 훨씬 많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는데 요즘은 부쩍 서운하다. 그외의 다른 것들은 열심히 하고 있지 않냐는 말은 내가 과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더욱 입을 다물게 만든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지워지고 있다.


읽지 않은 책을 그냥 치워버리기엔 마음이 걸려, 소장하지 않을 책들을 급히 읽는다. 군고구마를 한 손에 쥐고, 붓기차를 담은 보온병을 옆에 두고서. 겨울이 끝나기 전에 넘겨야 할 페이지들이 잔뜩 쌓여 있다.


나는 점점 옅어진다. 이 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는 알 수 없는 채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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