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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17. 2023

야채 김밥 안 먹는 초등학생의 소풍 도시락

2. 편식러의 가을 소풍 도시락

초등학생에게 있어서, 학교의 가장 큰 행사는 뭘까?


내가 떠올리는 행사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체육대회, 합창대회, 학예회, 수련회, 수학여행, 소풍이 있다.


이것들 중에서, 소풍.


소풍은 수련회 갈 나이도 안 된, 저학년 초딩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이벤트였다. 과자를 가방에 넣고, 신나게 학교를 벗어나는 관광버스를 타는 재미란….


아무튼 소풍 하면 빠질 수가 없는 건 도시락이었다.




 시절, 김밥나라(혹은 김밥천국) 가면 기본 김밥  1500 정도에 사먹을  있었다. 워킹맘이었던 분들은 새벽같이 김밥나라에서 도시락 통을 들고  포장해서, 아이들을 소풍에 보내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워킹맘이던 시절이라, 어떨 때에는 언니 소풍 도시락을 김밥나라에서 포장하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면, 직접 싸주시기도 했다.


픽사베이 김밥 사진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보편적으로 도시락 체인점들이 잘 되어있지도 않았고, 그냥 소풍 도시락 하면 김밥으로 가득 채우거나, 더 나아가 2단 도시락으로 위에 과일 정도를 싸주는 것이 국룰이던 시절이었다. 물론, 소수지만 유부초밥을 싸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은 하나만 달라도, 유독 주목을 받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30명의 학생이 있는 반에 단체 간식으로 들어온 게 빠삐코 아이스크림이었을 때.

그 서른 개의 아이스크림들 중 10개만 밀크셰이크 맛이었을 때.

그럴 때 갖고 싶고, 먹고 싶어 했던 희귀성과 특별성 같은 느낌이랄까.

오리지널 초콜릿맛 스무 개보다 열 개의 밀크셰이크맛 빠삐코가 특별히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나의 소풍도시락은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김밥은 비주얼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난 참치를 정말 좋아하고, 참치 주먹밥도 좋아했다.

그러나, 김밥은 안 좋아했다. 그 속에 든 단무지도, 당근도 싫어했다. 야채를 거의 못 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내 김밥을 싸줄 때는 참치 김밥을 싸주었는데, 이건 보통 익히 알고 있는 참치 김밥과는 달랐다.


정말, 김하고 밥하고 참치만 달랑 들어가는 게, 내 도시락의 구성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참치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을 먹었으면 될 일이었던 것 같은데.

난 어릴 때 그렇게 싸주던 김밥을 좋아했었다.

다들 김밥을 도시락에 들고 오니, 야채는 싫어하지만 비슷하게 구색은 맞추고 싶었던 걸지도….


나만의 참치 김밥


지금도 엄마가 김밥을 싸주면서도, 단무지도 안 들어간 김밥을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한숨 쉬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야채 한 조각 안 들어간 김밥을 싸주면서, 어쩐지 식습관 교육 시키는 건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보통 소풍 간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친한 친구들과 앉아 오손도손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이 초등학교 소풍의 소소한 재미였다.

그러면서, 다른 집 김밥 맛도 보려고 나눠 먹고, 도시락을 끝낸 다음엔 간식으로 싸 온 과자들로 군것질도 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밥 먹고 후식 먹는 건 변함없는 듯하다.)


어쨌든 각자 도시락을 열면, 아이들이 서로 구경을 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친구들은 보통 단무지와 당근, 햄, 계란 지단 등이 들어간 기본 김밥을 싸왔다. 유부초밥도 드물게 있었지만.

그리고 그렇게 싸 온 도시락을 보면서, 서로 마음에 드는 밑반찬(비엔나 같이 곁들여져 있는 것들)을 상대방 도시락에서 ‘이거 먹어도 돼?’하고 허락을 구한 다음, 가져가고 자신의 도시락에 있던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서로의 매너였다.


이때 소풍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 온 아이들이 대다수라서 그런지, 별것도 안 든 처음 보는 참치 김밥 비주얼에 사로잡혀 아이들은 내 참치 김밥을 그렇게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이하다….

집에서 엄마들이 화려하게 단무지, 당근, 시금치, 햄, 계란 온갖 것들을 정성스럽게 싸준 형형색색의 김밥들보다 달랑 참치 하나만 든 김밥을 그렇게 먹어보고 싶어 했다. 다들.


아무튼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김밥과는 확연히 달랐던 내 참치 김밥 비주얼에 매혹(?)당했고, 다들 ‘한 개만 먹어봐도 돼??’를 외쳤다. 물론, 난 흔쾌히 나눠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싸 온 김밥을 하나 가져가라고 내밀었는데.


그때의 난 일반 김밥을 아예 못 먹는 상태라서, 괜찮다고 마다했었다. 그 덕분에 난 아이들에게 나만의 참치김밥을 나눠주고, 아이들의 김밥을 먹지 않아 완전히 배가 부르진 못한 소풍 도시락 타임을 가졌다는 웃픈 얘기다.


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했던 내 참치 김밥의 인기에, 나중엔 일부러 여분을 더 싸가기도 했다.(나는 아이들의 김밥과 교환해서 먹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내 도시락만 줄어서 미리 넉넉하게 싸갔다.)


엄마도 나중에 내 얘기를 듣더니, 어이없게 웃으셨던 것 같다. 참치밖에 안 든 김밥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니. 어른의 입장에 보면, 희한하긴 하다.


지금 내가 돌이켜 회상해 보면 그러니까 말이다.  지금은 물론 김밥을 아주 잘 먹는다. 단무지고, 당근이고. 그냥 김밥 안에 싸여있으면 잘 먹는다. 그리고 어른의 참치 김밥도 잘 먹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엄마가 소풍 가는 나를 위해 참치만 가득 넣고 만들어준 참치랑 밥밖에 없는 그 참치 김밥은 지금도 가끔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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