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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15. 2023

‘수요일은 잔반 없는 날’의 기쁨과 슬픔

1. 편식의 역사: 초등학교 급식지도 연대기 (3)


요즘에도 수요일을 잔반 없는 날로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를 다닐 적에는 수요일에 특별한 날처럼 맛있는 것들이 모조리 나왔는데, 그날은 밥을 남기지 않고 먹는 날이었다.


짜장밥이라던지, 잔치국수라던지, 스파게티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주고, 맛있는 음식이 나오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하는 날.


하지만 아무리 특별식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김치는 한국인의 필수 밑반찬이다.

마치 라면 먹을 때 꼭 배추김치를 꺼내 먹고, 짜파게티 먹을 땐 파김치를 챙겨 먹고, 치킨을 먹을 땐 치킨무를 챙겨 먹는 것처럼.


수요일 급식엔 메인 메뉴가 무엇이 나오든 어떤 종류의 김치든 무조건 나오는 것이었다.




수요일 급식

아무튼 수요일은 잔반 없는 날답게,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그 음식들을 남겨선 안 됐다.

내 기억엔 그날이 되면 평소보다 잔반통의 개수가 적었다. 평소에 4개였다면, 그날은 2개였던 것 같다. 딱 반절의 잔반통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급식을 다 먹는 날이기 때문에, 국을 제외한 일체의 반찬은 버리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그렇다면, 먹는 반찬만 배식받았으면 되었을 텐데. 그 당시의 소심한 초등학생이었던 내겐 ‘김치는 안 주셔도 돼요.’라고 조리사님한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활용한 방법(?)은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인맥을 활용하는 방법이란, 간단하다.

잔반 없는 날 반찬을 다 먹고 급식 검사를 받기 위해, 친구한테 대신 김치를 먹어달라고 한 것이다.


편식 없이 잘 먹는 친구는 김치를 다 먹어주었고, 난 별 다른 문제 없이 수요일의 급식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수요일은 잔반 없는 날이 있었는데. 이 잔반 없는 날은 철저히 자유였다.


다만, 잔반 없이 다 먹은 학생들을 검사하여, 반마다 인원을 체크했는데. 대동단결해서, 잔반을 남기지 않은 인원이 제일 많은 학급은 그 달의 우승(?) 학급이 되었다.

그 우승 학급에는 원하는 간식을 넣어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내 반은 영애의 1위를 갖고, 간식을 배급받은 반이었다.


그러니, 모두 서로가 돕고 돕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 채소 반찬들은 점심을 같이 먹는 반 친구가 대신 먹어주기도 하고.

아님 가급적 먹는 급식만 받아서 다 먹었던 것 같다.


이땐, 그냥 안 먹는 '이 반찬은 주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생겨서 가능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잔반 없는 수요일’을 내심 기다리면서도, 야채만 가득한 비빔밥 같은 것들이 나올까 봐 항상 마음 조리며 식단표를 확인했었는데.

수요일은 밥의 자율성이 없어서 슬프기도 했고. 좋아하는 잔치국수가 나오는 날에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은 그렇게 배식해 주는 급식을 매번 받아먹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았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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