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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13. 2023

담임선생님 앞에 앉기 싫어요

1. 편식의 역사: 초등학교 급식지도 연대기 (2)

사실 초등학교 입학 후, 기억에 남는 급식 지도를 하시는 담임 선생님들은 몇 안 되었다.

솔직히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선생님도 직업이 선생님인 K직장인이니 급식 지도 안 하시는 게 편한데 해주신 거라 열정 교사셨던 것 같다.


아무튼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자면, 이미  번의 급식지도를 저학년에서 겪은 터라 조금씩 눈치가 상태였는데. 그래서 선생님의 급식 레이더에  걸리는 방법  가지를 체득했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선생님 근처에 안 앉기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보통 반아이들을 여자 남자 한 줄로 쫙 세우고, 한 번에 인솔해서 급식실까지 데려간다.

그리고 아이들을 챙기며 점심식사를 하시는데, 이때 급식 줄을 설 때 선생님의 근처에 서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그 근처에 줄을 선 순간, 선생님의 급식지도 대상이 되었다.


이런 것과 비슷하지만, 기출변형처럼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주마다 돌아가면서 역순으로 급식을 먹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급식줄 맨 앞에 서시는 지, 중간에 서시는지, 맨 끝에 서시는 지. 확인하기도 하고.

앉는 자리 선정도 중요했다.


단체 급식이라 테트리스처럼 앉지만, 어쨌건 방향은 정할 수 있다. 왼쪽에 앉을 건지, 오른쪽에 앉을 건지로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급식을 먹을 건지의 여부가 정해진다.


그래서, 나는 모든 눈치를 동원해서 가급적 선생님의 근처 자리를 최대한 아주아주 최대한 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생님과 가까이 앉는 날은 온다.


그리고,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난. 선생님의 전면에 앉게 되었다….


멀리 앉아 급식을 먹을 땐, 급식을 받을 때부터 ‘김치 조금만 주세요.’하고 급식을 타왔기에 그냥 먹은 척하고 가면 그만이었는데.

눈앞에서 먹고 급식 검사를 받으려니, 선생님은 점심을 드시면서도 매의 눈으로 내가 김치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날도 어김없이 김치를 먹지 않고 버티며, 은근슬쩍 급식검사를 받고 빠르게 급식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때, 딱 선생님한테 걸렸다.


“깍두기 하나는 먹어야지.”


…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 짧은 순간, 어렸던 난 빠르게 머릴 굴렸다.


1. 김치를 못 먹는다고 선언한다.(이 경우, 남은 학기 내내 담임 선생님이 전담 마크 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선생님 옆에서 점심을 먹게 된다.)

2. 눈 꼭 감고, 하나 먹는다.


전자의 경우, 매 점심시간마다 급식지도행이었다.

그러니 난 후자를 선택했다. 먹지도 못하는 깍두기를 한 번 씹고, 꿀꺽 삼키며 선생님의 레이더를 유유자적 피할 수 있었다.(그렇게 김치 잘 먹는 아이인 척했다.)


이때의 담임 선생님은 나를 김치를 먹는 애로 인식하셨는지, 그 뒤론 내 급식에 큰 관심을 갖지 않으셨고. 나는 마저 담임선생님과 전면 급식을 피해 가며, 무사히 특별리스트를 벗어나 1년을 마쳤다는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4학년으로 올라 간 어느 날. 다른 선생님한테 편식을 들키고야 만다.

그 계기는 기억나질 않는데, 이거 하나만은 기억난다.

내가 4학년 때,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들켜서 담임 선생님의 ‘급식 특별 지도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런 거에서 특별해지고 싶진 않았다.)


3학년 때까진, 저학년에 속해서 보통 담임 선생님들이 학급 아이들을 모두 인솔해서 한 테이블에 쭉 앉아서 먹고 담임 선생님도 함께 먹는 것이 룰이었는데.

4학년이 되자, 어쩌다 급식 특별 지도반에 속하고 말았는데. 이때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여기에 속했다.

그렇게, 같은 반 남자애 2명과 졸지에 급식 메이트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김치를 못 먹는다는 공통점 하나로 ‘밥만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어릴 적이니, 어색한 분위기 속에 먹은 건 아니지만.

다른 친한 친구들하고 점심을 못 먹는 게 어릴 때의 난 조금 슬펐다….


다른 친구들은 다들 한 테이블에 죽 앉거나, 자율성을 갖고 자리에 앉아 급식을 먹었는데. 우린 선택권 없이 담임 선생님 옆에서 꼬박꼬박 밥을 먹고 검사를 맡았다. 이 당시엔 너무너무 힘들었다.

매 끼니때마다 먹기 싫은 김치를 한 조각 이상 먹는 게 원칙이었고, 모든 반찬을 편식 없이 하나씩은 먹어야 했다.


어느 날은 감기에 심하게 걸렸던 적이 있는데, 그날만 엄마가 특별히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덕분에 그날만큼은 담임선생님의 급식지도를 받지 않고, 야무지게 국에 밥만 말아서 먹었는데. 이미 아프기도 했지만, 일부러 최대한 더 아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점심 급식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선생님이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급식 특별반은 너무 싫었지만, 또 말은 잘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여전히 난 김치를 싫어하고 안 먹는다는 사실.


그리고 4학년 급식 특별 지도에서 벗어나, 급식의 완전 자율성을 가진 고학년 5, 6학년에 접어들게 되는데.

급식실에서 자리 선택에 대한 자율성과 담임 선생님의 급식지도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워진 시기였다.


하지만 고학년 급식의 자유로움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규제는 있었으니.

그건 행복하지만, 편식러들에겐 어려운 규제 ‘수요일은 잔반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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