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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림 Oct 22. 2023

부처님이 할머니 남자 친구야?

번외. 외할머니의 손녀딸 육아

어릴 , 엄마랑 아빠는 맞벌이셨고.

학기 중에는 친할머니가, 그리고 방학 중에는 외할머니가 언니와 나를 돌봤다.


언니와 나는   터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외할머니언니 풀어두었어도 나는  챙겨서 데리고 다니셨다.(아직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꼬꼬마 시절이라 그랬던 )


외할머니의 취미 생활이라고 함은, 신앙생활이 다였다. 외할머니는 절을 정말 부지런히 다니시고, 꼬박꼬박 출석하시는 불교 신자셨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댁에서 지내다 보면 할머니가 가끔 한지로 연꽃 연등도 만드시고 한복 모양도 곧잘 접으셨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재밌어 보여서, 할머니한테 가서 그게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절에서 내준 숙제'라고만 하셨는데. 아직도 그건  모르겠다. 정말 절에서 숙제도 내주나?


그리고, 정말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매일같이 절에 다니시는  보며 '부처님이 할머니 남자 친구야?'라고 묻는 호기심 어린 망발을 했는데. 할머니는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절을 성실하게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스님과 절밥을 배식해 주시는 분하고 친하면 그곳의 고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요즘말로 절의 핵인싸셨던 걸로 기억한다.

절에 가면 거의 모르는 이가 없었고, 나도 덩달아 열심히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다녔다.


어린애가 할머니 따라 절에 와있으니, 다들 귀엽게 여기고 절에 있는 초콜릿 사탕을 내게 몽땅 주셨던 기억 난다.( 달달했다.)


왕년에 할머니의 절생활을 쫓아다닌 아이라면 알 테지만, 할머니가 기다란 염주를 앉은자리에서 끊임없이 무한루프로 돌리고 있자면.

스님은 맨 앞에 착석하셔서, 갈색과 붉은색의 중간쯤 되는 책을 보시고 외시면서 기도를 하신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한 시간 이상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난 할머니가 옆자리에 펴준 널따란 방석(요가학원에 요가 매트가 있는 것처럼, 절에도 절을 할 때 쓰는 큰 사이즈의 방석이 구비되어 있다.) 위에서 할머니가 준 염주를 열심히 돌리다가, 금세 싫증을 느끼고 그 위에 누워서 잤던 것이 기억난다.(절의 금쪽이였을 수도...)


그래도 다행인 건, 다른 분들의 기도에 피해는 주지 않고 조용히 딴짓을 했었다는 것 정도?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 옆에서 염주를 돌리고, 절 책을 읽고, 낮잠을 잤다가 일어나면.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한 시였나, 그쯤 점심을 배식해 주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절밥은 원래 햄이나, 고기, 계란 같은 것들이 없었고 나물과 김치, 야채들 투성이었다.

각종 야채를 편식하는 내게, 절밥은 극악의 난이도였다.


티브이에서 보면, 한 그릇에 다 먹고 마지막엔 그릇을 단무지로 쭉 닦아서 먹기까지 하는 절밥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동그랗고 납작한 뷔페식 그릇에 음식을 먹을 만큼만 담아서 먹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나물과 김치가 즐비하는 이곳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끈 반찬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그건 바로, 김이었다!


우리 할머니 말고도, 다른 할머니들도 황혼 육아에 여념이 없던 탓에 절에는 다른 아이들도 꽤나 많았는데. 아이들 역시 나정도는 아니지만, 아직 햄과 김 같은 걸 좋아할 나이였고. 매 절밥 끼니마다 김 반찬을 차지하려면 1등으로 나가야 넉넉한 조미김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게 가는 날이면 나의 원픽 반찬인 김이 없었던 탓에 타이밍을 잘 맞춰서 나가려고 할머니는 항시 분주하셨다.


그리고, 김반찬 다음으로 내가 절에서 먹을 만했던 건 절의 인절미와 꿀떡이었다. 할머니가 다니시던 절에서는 후식으로 매번 떡을 주었는데, 대개는 인절미, 꿀떡, 찰떡, 시루떡이었다.

이것들 중 제일 좋아했던 건 인절미와 꿀떡. 그리고 콩과 팥이 들어가는 시루떡은 또 편식했다.(지금은 다 먹는다)




외할머니는 호수 같으신 분이셨다. 세상 순리를 물 흐르는 대로 놓아두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타인에게 강요나 명령 같은 것과는 정말로 거리가 먼 분이셨다.

자식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말려도, 결국 자식들 마음대로 하게 되어있다며 내가 알기론 크게 반대 같은 것 없이 사신 분이다.

그러니, 내 지독한 편식에도 나를 자유롭게 풀어준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셨다.


어린 시절, 모두가 김치와 채소를 강요하는데 외할머니만큼은 나를 내버려 두셨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나에게 무관심했다거나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고 생각한다.


난 할머니가 해주시는 식혜를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특히 식혜에 들어간 밥알을 엄청 좋아했다.

어렸을 땐 할머니가 해주신 식혜를 시리얼 그릇에 국자로 퍼담아 시리얼처럼 떠먹었을 정도였으니까.

보편적으로 식혜가 밥알 몇 알이 동동 떠있는 음료라는 사실은 나중에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알았다. (식혜가 음료라니,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식혜에 들어간 밥알을 유독 좋아해서 엄청 많이 넣어주셨을 뿐이었던 거다.


매번 절에 다녀오시는 날에는 크런키 초콜릿을 사다주시기도 하고, 다정한 분이셨다. 그저 내 편식에 상관하지 않으신 것은.

'언젠가 다 알아서 먹게 된다.'라는 마음에서였다.


할머니의 굳은 신념은 10년이 넘게 지나, 현재를 바라보노라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생김치는 안 먹지만. 지금은 편식의 범주에 거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이것저것 잘 먹는 사람이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냥 생김치는 입맛에 안 맞아서, 어쩔 수 없는 거로.


아무튼 할머니의 자유로운 교육 방침은, 어린 시절 내게 유일한 오아시스 같았다.

그러니, 부디 지금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이젠 덜 편식하는 손녀를 흐뭇하게 보고 계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할머니, 전 이제 시루떡에 팥 안 털어내고 잘 먹어요! 그리고 볶음 김치도 잘 먹는 어른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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